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에서 1월 1일은 가장 큰 명절중 하나입니다. 1월 1일 신정, 12월25일 성탄절과 종교적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을 가장 큰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1월1일인 신정에는 전통적으로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그날 가족들끼리 모여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새해의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을 합니다. 새해 첫날 담배와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는 남자들은 2월말까지 대부분 실패합니다. 제가 루마니아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신정은 1989년 1월 1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당시 엄격한 대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정신 없어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던것 같습니다.
1990년 1월 1일에는 루마니아에서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난 지 2주밖에 안되어 온 국민이 수 천 명의 혁명 희생자들을 애도 하고 있을 때여서 그다지 기쁘게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사회가 혼란스럽고 슬픔에 잠겼는데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미래의 소망을 간직할수 있었습니다. 길에서는 총탄이 날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있는데, 저의 아버지는 목숨 걸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집으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아버지의 그러한 행동은 저에게 루마니아 사람들의 가치관을 또 한 번 가르쳐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전쟁, 혁명, 내전, 대공황, 자연 재해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자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지켜 자손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공산주의 혁명이후 루마니아가 개방되어 대학생들은 다시 유학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쿠레쉬티 대학 일학년생이던 저도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남한 유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남한에서 10여년을 살면서 남한 명절의 깊은 의미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정, 구정, 추석, 성탄절이나 석가 탄신일 등이 있고 특히 추석과 구정은 남한에서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함께 하는 날로 남한의 고속도로들은 주차장이 되어 버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길을 떠나면 추석같은 명절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꼬박 하루까지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 살면서 루마니아의 명절 분위기와 가족 상봉을 그리워하던 저는 남한 사람들의 정과 남한의 인상 깊은 전통을 경험하면서 두 번째 고향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 경제 강대국들은 산업화를 하서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를 없애고 핵가족 중심의 사회 제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한은 세계 12위의 경제 강대국에 포함되어 있으며, 아직까지도 대가족 성향을 띤 핵가족 제도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제, 기술, 사회, 정치 발전과 아름다운 전통과의 조화는 저에게 아직까지도 경이로운 일입니다.
특별히 명절 때면 여러 가지 이유로 불우한 이웃들과 명절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공산주의 시대 때 모든 루마니아 사람들은 인권 탄압과 식량 부족에 의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전통을 지켜왔습니다.
그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 중에서도 이산가족이 있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서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망명한 루마니아 사람들은 조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에 있는 가족들도 자유민주주의 세계로 망명할까봐 외국에 있는 가족을 방문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루마니아 노인들만이 망명한 자식들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공산주의 정부는 노인들이 루마니아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경우 정부가 그들의 의료보험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국을 떠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저에게는 가족과 떨어져 명절을 보내는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 명절 때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하는 지도 공감할 수 있습니다.
현재 루마니아와 남한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저희 가족들은 민주주의 세계 아무 데나 아무 때에 만날 수 있습니다. 2010년의 새해를 맞이하면서 남북한의 이산가족, 또한 남북한의 온 국민이 자유로이 만날수 있는 날이 오리라 다시 한번 희망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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