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정대세 한국 프로축구팀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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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루니'로 불리는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 정대세가 한국 축구단 수원 블루윙즈와의 3년 계약을 마쳤습니다. 그전에 정대세 선수는 도이췰란드 프로축구 2부 리그 FC쾰른 (FC Koln)의 선수였습니다. 북한 대표팀 선수가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북한 축구 대표 선수 중 량규사 선수가 2011년 울산 현대에 소속되어 있었고, 김영휘 선수가 2002년 성남 일화에 입단했으며, 안영학 선수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수원 블루윙즈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정대세, 량규사, 김영휘와 안영학의 공통점은 한국에서 활동했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모두다 일본에서 태어난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들입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축구 강국입니다. 약 5년전부터 북한 축구연맹도 북한 축구선수들을 해외 축구팀에 진출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이 노력의 목적은 북한 축구 선수들이 경쟁이 치열한 해외 축구 경기에서 경험을 쌓으며 그들의 기술을 향상시키는 것과 북한 선수들을 해외로 진출시켜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북한이 축구 선수들을 해외에 진출시키려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습니다. 냉전시대에 공산주의 독재국가이던 동유럽 축구 선수들은 해외로 진출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 당시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려면 망명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비효율적인 중앙계획경제와 독재자들의 비합리적 제도 때문에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이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경쟁을 할 수 없어서, 올림픽, 축구 월드컵이나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만 경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선수들을 모국에서만 활동하도록 하고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냉전시대에 서도위칠란드로 망명한 300명을 포함한 동도이췰란드 사람들 중 600명이 훌륭한 스포츠선수였습니다. 망명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23세 동도위칠란드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이던 루츠 아이건돌프 (Lutz Eigendorf)가 1979년에 서도이췰란드로 망명했지만, 4년후 동도위칠란드의 악명 높은 STASI라는 비밀경찰에게 암살을 당했습니다.
2006년 세상을 떠난 '페렌츠 푸스카스' (Ferenc Puskas)라는 마쟈르, 즉 헝가리 선수는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최초의 국제적인 '스타'였습니다. 그는1950년대 '마법의 헝가리 군단'이라 불린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푸스카스'는 에스빠냐의 유명한 '레알 마드리드'팀의 선수가 되기 위해 1956년 에스빠냐로 망명했습니다.
2007년 세상을 떠난 로므니아의 '축구 전설'이라 불리던 60세인 '니콜라에 도브린' (Nicolae Dobrin)은 1960년대후반과 1970년대 우수한 기술과 재능으로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축구팬과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25살때 '도브린'에게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도브린'의 로므니아 축구팀이 에스빠냐의 '레알 마드리드'와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도브린'은 역사기록에 남을 훌륭한 경기를 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유명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회장이 그 당시 79세 이었는데, '공산권의 기적'을 보기 위해 바퀴 달린 의자를 타고 경기장에 나왔습니다.
그 이후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은 건강에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로므니아를 방문하여 로므니아 독재자를 직접 만나 '도브린'에게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하게 허락 해 준다면 그 당시 엄청난 미화 200만 달러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로므니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도브린'이 '국가 재산'이라 하여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망명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이후로는 외국경기에 출전을 못하게 했습니다.
북한 국가대표팀은2010년 월드컵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제축구연맹 (FIFA)의 207국가 중 99위에 머물러 있습니다. 북한 선수들, 특히 북한 국적의 재일교포 선수들이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더라도 북한 국가대표팀의 경기를 국제기준에 맞게 개선하는 방법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엄청난 국제적 산업이 되어 버린 축구는 경제 발전 수준과 세상을 움직이는 시장 경제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