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핵과 미사일 포기 않는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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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월 7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발사장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한달 전 1월 6일 북한은 네번째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월7일 긴급회의를 열어 북한의 동북아시아와 세계 평화 위협을 논의했습니다.

북한은 1985년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 가입했으나 1993년 탈퇴했습니다. 그 이후 북한 정부는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지만, 그 합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2007년 6자회담이 진행되었고 북한은 핵 시설 폐쇄와 불능화, 핵사찰 수용, 중유 지원 100만톤같은 인도주의적, 경제적 지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 합의도 위반하고, 2009년 2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2012년2월 북한은 미국과의 회담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일시 중지하고 미사일 발사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 합의도 위반하여 2012년 4월13일, 12월12일, 2016년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 2016년 1월, 각각 3차와 4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세계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와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대북제재 결의 1695호, 1718호, 1874호, 2087호와 2094호를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아시아의 구정과 미국의 미식 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하루전에 실시되었습니다. 북한은 군사도발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 국가기념일이나 다른 행사에 재를 뿌리려고 한 적이 많습니다.

2006년 10월 반기문 전 한국 외교통상부장관이 유엔사무총장직에 오를 것이 확정된 날 북한 정부가 지하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7월 북한은 미국의 독립기념일을 앞두고 노동, 스커드 등의 중거리, 단거리 미사일 7기를 발사했습니다.

2003년 2월 한국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북한은 동해에서 미사일을 발사했고, 2002년 한국과 일본이 유치한 월드컵축구 결승전을 앞두고 북한의 해군은 비극적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2002년 6월 29일 북방한계선을 무단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 맞선 한국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병사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또한 한국이 유치한 88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 11월 29일 북한 특수요원들은 중동 아부다비에서 이륙해 방콕을 경유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858기를 폭파시켜 115명의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북한 정부는 인권을 유린하고, 주민들을 굶기고 탄압하며 희생시키면서 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추진해 왔습니다. 3대 권력 세습을 이룬 김씨 일가의 최후의 목표는 양이 한정된 재처리 플루토늄뿐만 아니라, 비교적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원자 폭탄을 소형화 시켜 장거리 핵미사일을 만들어 미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를 협박하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김씨 일가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 어렵게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그러한 개발을 하는 데 필요한 투자는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무기를 개발하는 데에만 돈을 많이 쓰고 주민들의 복지에 대해 신경을 안 쓴 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1994년, 2007년, 2012년 합의를 위반하고 제1,2,3,4 차 핵실험을 실시하며 김씨 일가의 정권은 핵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국제사회에 전달했습니다. 오직 김씨 일가의 정권 유지만을 목표로 하는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이웃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국제사회에 참여하는 경제 발전과 개혁, 개방으로 가는 길을 점점 멀어지게 하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