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스탈린 사망 60년 후

0:00 / 0:00

60년 전인 1953년3월 5일 ‘붉은 황제’라 불리던 이오시프 스탈린 구소련 독재자가 사망했습니다. 스탈린 정권의 특징은 독재자 개인숭배, 사악한 인권유린, 정치탄압, 강제노동수용소, 숙청, 살인, 소수민족 대학살, 전범, 기아와 독립국 침략을 통한 ‘붉은 위성 국가’ 건설이었습니다. 1878년에 태어난 스탈린이 1924년 레닌이 사망한 후 레닌의 ‘신 경제 정책’을 중앙계획경제와 사악한 개인독재로 바꿔놓았습니다. 스탈린이 소련을 강제로 산업화하면서 소련의 농업은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대규모 기아로 소련 주민이 600만에서 8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들 중 400만 명에서 500만 명이 당시 구 소련에 속하던 우크라이나 주민이었습니다.

1937년과 1938년에 구 소련에서 ‘대숙청’이라 불리던 대학살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스탈린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 공산당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했고, 농민과 소수민족을 탄압했으며, 주변에 연고가 없는 사람들까지 간첩 혐의로 수용소에 수감해 학살했습니다. 사상자 수는 공식적으로 68만1천692 명이지만, 실제로는 2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기밀시효가 해제된 구 소련 문서에 따르면, 1937년과1938년에 소련의 비밀경찰(NKVD)이 154만8천367 명을 구속했고, 이 중 68만1천692명이 총살되었습니다.

1939년9월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 도이췰란드와 스탈린이 주도한 소련이 뽈스까를 침략하면서 제2차세계대전은 시작되었습니다. 뽈스까에서 도이췰란드와 소련은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면서 끔찍한 전범을 저질렀습니다. 1940년 4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악명 높은 구 소련 비밀경찰(NKVD)이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 숲’에서 전쟁 포로로 붙잡힌 뽈스까 장교 2만 2천여명을 살해했습니다.

제2차 대전 때 나치 도이췰란드에 의해 야만스럽고 잔인한 대학살을 겪은 유럽의 유태인 다음으로 고통을 가장 많이 겪었던 사람들은 바로 로씨야 국민이었습니다. 나치 도이췰란드 침략에 의해 소련 군인과 민간인 모두 합쳐 2천300만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또 많은 소련 사람들은 스탈린 공산주의 독재 때 수용소로 이송되어 침엽수림에서 사망했습니다.

제2차 대전직후에 소련은 엄청난 군사력으로 로므니아,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 벌가리아와 뽈스까를 짓밟은 뒤 동도이췰란드처럼 공산주의 국가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들 나라의 공산주의자들은 스탈린의 명령을 받아 전통적인 가치관, 문화와 역사를 잔인하게 짓밟아 없앴습니다. 그들은 동유럽의 정치인과 지식인들을 교도소와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내 소위 엘리트 계층, 즉 지식인들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스탈린 자녀들의 운명은 어땠을까요? 스탈린의 큰아들인 ‘야콥’은 제2차 대전 때 도이췰란드군에 의해 생포되었습니다. 스탈린의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도이췰란드 군이 도이췰란드 포로들과 교환하자고 하자 스탈린은 포로란 없고 배신자만 있을 뿐이라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얼마 후 스탈린의 아들은 자살했습니다. 또 그의 작은 아들인 ‘바실리’는 알콜 중독으로 사망했습니다. 스탈린의 딸인 ‘스베틀라나’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14년이 지난 1967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며 토론회나 연설을 통해 아버지의 잔인한 독재와 인권 유린을 비판하였습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 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정권 하에서 예전 스탈린 정권의 상징이던 강제수용소와 극심한 정치탄압과 인권유린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물론 흐루시초프도 개혁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흐루시초프도 소련과 동유럽 사람을 공산주의 체제에서 해방하려고 했던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 제도는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로부터 유래한 것입니다. 북한의 사회안전성은 김일성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1950년대와 1960년대 많은 노동당 고위관리들과 다른 주민들을 숙청했습니다. 김일성 1인독재와 ‘주체 사상’을 북한체제의 기본으로 설정하기 직전 10만 명 가까이 정치범으로 처벌을 받았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관리였던 탈북 인사에 의하면 이들 중 1960년대7만여명이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고 6천여명이 살해되었습니다. 구 소련이 와해되어 동유럽의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지 24년이 흘렀지만, 스탈린의 사악한 유산의 유물로 남아 있는 것은 김씨 일가의 독재가 면면히 이어지는 북한, 20만 여명이 수감되어 있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