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로널드 레이건 제40대 미국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가 지난 6일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21년 뉴욕에서 태어난 낸시 여사는 남편처럼 할리우드 영화배우 출신이었습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영화배우 생활을 하다 1952년 당시 유명 배우였던 레이건과 결혼했습니다.
낸시 여사는 대통령인 남편의 가장 열렬한 수호자였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낙천주의와 희망을 심어 침체됐던 미국의 경제를 결국 소생시키고 붉은 제국이던 구소련을 와해시켰습니다. 그 낙천주의와 희망은 낸시 레이건 여사가 불어넣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레이건 전 미국대통령은 12년전 2004년 6월 5일 93세를 일기로 타계했습니다.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대통령 직을 연임했습니다. 그는 퇴임 후 5년 뒤인 1994년 기억을 상실하는 병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10년동안 투병했습니다. 낸시 여사는 그 10년동안 남편이 앓던 알츠하이머 퇴치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레이건 전대통령과 낸시 여사의 생애는 'American Dream,' 한국말로 '미국의 꿈'을 상징합니다.
레이건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영화배우로 활동하다 정치 무대에 등장한 뒤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었습니다. 레이건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두 번이나 출마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레이건은 포기 하지 않고 도전하여 결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81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을 연임했습니다. 그는 구 소련이 지배하던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을 주도하고, 사실상 승리하면서 역사상 위대한 미국 대통령과 자유 민주주의 세계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연예인 출신 레이건 대통령의 연설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레이건은 강력한 미국의 대통령이었지만, 그의 유머 감각도 뛰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농담을 기억합니다. 레이건은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당선되었을 때 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가 레이건에게 어떤 종류의 주지사가 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연예인 출신 레이건은 주지사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어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1981년 암살 시도 사건이 일어나 레이건은 총에 맞았습니다. 수술 받기 직전 심한 부상을 입었어도 여전히 농담할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응급실 의사들과 간호사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다 공화당 당원이시죠..' 암살 시도 이후 레이건 대통령이 입원하는 동안 낸시 여사는 병원에서 헌신적인 간호를 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체제가 무너진 지 27년이 지난 지금 특히 동유럽 사람들은 레이건 전 대통령과 낸시 여사를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전쟁없이 강력한 미국을 건설하였고 연설과 협상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1980년대 냉전 시대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하던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차우셰스쿠의 공산주의 독재체제하에서 저의 외할아버지와 '자유유럽방송'이나 '미국의 소리'와 같은 외국 방송을 몰래 들으며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습니다. 그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웅변은 동유럽사람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는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표현하고 공산주의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라 예측했습니다. 다른 소련 지도자들보다 융통성이 있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서기장과 레이건의 관계는 아주 특별했습니다.
개혁 정책을 이끌어 나가려 했던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지혜로운 지도자답게 합리적으로 협상을 하면서 전쟁하지 않고, 냉전 시대를 끝내고 말았습니다.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독일이 통일되기 전 레이건 전 대통령은 독일의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한 베를린 장벽을 보고 '그 장벽을 빨리 없애야 한다'고 했습니다. 로므니아 사람들까지 포함해 많은 동유럽 사람들은 공산주의 체제를 와해시키는 데 레이건 전 대통령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로므니아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는 레이건 전 대통령과 관련된 뉴스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언젠가 루마니아가 개방돼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서 드디어 레이건 전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표시를 나타낼 기회가 왔습니다. 12년전 2004년 6월 9일, 레이건 전대통령의 관이 실린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고, 수만 명의 미국인들과 함께 네 시간 동안 줄을 서, 레이건 전대통령의 유해가 안치돼 있는 의사당에 들어가 조문하였습니다. 그날 제가 가장 신기하다고 생각한 것은 일반 사람들이 관이 실린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박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레이건 전대통령이 두 번이나 대통령직을 역임하면서 미국의 경제는 활발해지고 그의 외교 정책도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93세에 생애를 마친 전대통령은 더 이상 여한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난 6일 별세한 낸시 여사도 마찬가집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강력한 외교 정책덕분에 자유를 되찾은 동유럽 사람들도 '자유의 전사'이던 레이건 전대통령과 낸시 여사를 존경스럽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로므니아, 벌가리아, 뽈스까와 다른 동유럽 나라들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것 또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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