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미국의 유명한 농구 선수단 ‘할렘 글로브트로터스’가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는 은퇴한 유명 선수들로 구성된 농구단입니다.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와 함께 북한을 방문한 13년전 은퇴한 데니스 로드맨 선수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만찬에서 술을 같이 마시고 우정을 나누었다고 세계 언론에 밝혔습니다. 또한 로드맨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이 ‘오바마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원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포츠 교류를 통해 민간외교를 촉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행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북한과 같은 인권탄압국의 경우는 다릅니다. 대다수의 북한 주민은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 해외 여행도 못하고, 북한 내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외국인들을 자유로이 못 만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한국 사람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직접 알 순 없으며 민간외교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김정은 정권이 계속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이웃나라들을 장거리미사일, 핵개발과 군사도발로 계속 위협하면서 데니스 로드맨과 같은 외국인 유명인사들이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김정은 정권 선전과 김정은 우상화를 강화시키는 데에만 이용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김정은 정권은 미국 농구 선수들의 북한 방문을 허가하면서 1970년대 초반에 미국과 중국과의 ‘탁구 외교’를 모방하려 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미국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중국과의 외교 정상화를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냉전시대에 미국은 ‘붉은 제국’이던 소련과의 핵 군비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요, 중국과의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세력균형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중국의 고위층도 1960년대 후반부터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외교정상화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됐었습니다. 그 당시 미국과 중국 탁구 선수들이 1971년부터 경기를 한 것이 미국과 중국의 외교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미국과 중국이 1973년부터 연락 사무소를 통해 양국간의 관계를 관리하여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 때인 1979년에 외교관계를 수립했습니다.
냉전 시대가 끝나고 구 소련이 와해되어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지 24년이 되갑니다. 북한의 경우 1970년대 초반에 ‘탁구 외교’와는 아주 다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외국 관광 회사들이 외국인을 위한 북한 내 골프 경기나 프리스비 경기와 같은 스포츠 대회를 통해 ‘탁구 외교’의 교훈을 삼는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김씨 일가의 문제는 미국과의 대화를 위한 ‘민간 채널’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신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1985년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했으나 1993년 핵 확산 금지 조약을 탈퇴했습니다.
그 이후로 북한 정부는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지만, 그 합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2007년 6자회담이 진행되어 북한은 핵 시설 폐쇄와 불능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 합의도 위반하여 결국 2009년 제2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2
012년2월 29일 북한은 미국과의 회담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일시 중지하고 미사일 발사도 중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그 합의도 위반하여 2012년 4월13일, 12월12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2013년 2월 3차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의 정권을 이해하지 못해 ‘탁구 외교’와 같은 민간채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고 굶기며 이웃나라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김씨 일가의 정체성과 기본원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김씨 일가의 정권이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하기 위해 ‘탁구 외교’가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수 십 년 동안 미국과의 대화를 담당해온 북한의 고위 외교관들은 미국과 국제사회와 접촉할 수 있는 공식적인 외교 채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에 참여하려면 ‘탁구 외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권 상황 개선, 투명성, 국제법과 국제기준 준수를 통해 외교 신뢰성을 찾으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