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대에 북한과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는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였습니다. 루마니아 주민들이 1989년 12월에 반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와 그의 아내인 엘레나는 처형을 당하고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습니다. 1989년까지 공산주의 시대 독재체제 하에서 살던 루마니아 사람들은 언론 검열 때문에 새로운 외국 영화나 TV방송을 시청하진 못했지만, 요즘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에서는 '태양의 후예'와 같은 한국 TV드라마까지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할 수 있습니다.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 하에서는 전기를 아껴 쓰기 위해 하루 2시간밖에 방송되지 않던 TV중앙방송국이 독재자와 그의 아내를 숭배하는 독주회, 연주회와 음악회를 반복해 방송했고, 미국이나 서유럽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를 보더라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옛날 영화만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만든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저도 북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꽃파는 처녀,' '이름 없는 영웅들'과 '명령 027호'와 같은 영화는 루마니아 사람들이 많이 봤던 영화입니다.
'꽃파는 처녀'와 같은 영화의 내용은 북한 공산주의의 선전을 위한 것이었으나 그 당시 많은 루마니아 사람들은 독재자를 위한 방송을 보는 것보다 외국에서 만든 영화를 더 재미있게 봤습니다. 모든 북한 영화가 공산주의 선전을 위한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배우들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영화 또한 작품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영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에 따르면, 냉전 시대에 루마니아 영화는 북한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특히 세르쥬 니콜라에스쿠라는 루마니아 감독의 '깨끗한 손으로'와 같은 액션 영화를 많이 즐겼습니다.
2013년에 세상을 떠난 세르쥬 니콜라에스쿠 감독은 50년간 감독 생활을 하면서 60편의 영화를 제작했습니다. 니콜라에스쿠 감독은 공산주의 시대 한정된 예산으로 루마니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액션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는 '깨끗한 손으로'와 같은 영화를 감독하면서 주인공 '몰도반' 형사 역할까지 맡았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대전 직전의 루마니아이며 주인공이 루마니아의 나치 극단주의자들과 싸우는 내용이었습니다.
1989년 루마니아의 반공산주의 혁명 때 니콜라에스쿠 감독은 활동이 아주 활발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 독재를 무너뜨린 혁명지도자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영화의 주인공처럼 '깨끗한 손으로' 악당을 무너뜨렸던 것이었습니다. 니콜라에스쿠 감독은 부활한 루마니아 국회에서 1992년부터 사회민주당 의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생활을 하면서 1990년대 영화감독 활동도 활발히 했습니다. 니콜라에스쿠 감독의 '15'라는 영화는 일반 주민의 관점에서 본 루마니아 반공산주의 혁명을 바탕으로 합니다.
니콜라에스쿠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던 북한 시청자들은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이후 최근까지 그가 펼친 감독생활과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잘 모를 것입니다. 루마니아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깨끗한 손으로'와 같은 니콜라에스쿠의 영화가 북한에서 인기가 좋았던 것처럼,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반공산주의 혁명과 공산주의 독재체제 와해에 관한 그의 영화가 언젠가 북한에서도 개봉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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