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0월초만 되면 저는 1989년 가을이 생각납니다. 그해 10월과 11월 불과 두달새, 독일은 분단 44년만에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다른 동유럽 공산주의 나라들도 자유와 민주주의의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로므니아(루마니아)의 부꾸레슈띠 대학 1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당시 로므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김일성 국가 주석과 돈독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로므니아 주민들은 독재자 신격화, 정치 탄압, 인권 유린과 식량 부족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았습니다. 당시 로므니아는 다른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보다 상황이 북한과 가장 비슷했습니다. 차우셰스쿠 독재정부의 언론검열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국내 방송을 통해서는 바깥나라 소식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전력난 때문에 하나밖에 없던 TV 방송국도 매일 저녁 2시간밖에 방송하지 않았고, 그나마 그 짧은 시간에 방송된 것도 주로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관련된 뉴스와 독재자를 위한 연주회나 독주회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9월부터 루마니아 사람들도 동유럽에서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나마 단파로 통해 들여오던 '자유유럽방송'을 통해서 바깥세계의 좋은 소식을 하나둘씩 들으면서 루마니아도 어쩌면 개방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외할아버지와 함께 혹시나 이웃사람에게 들키지 않게 라디오 소리를 바짝 줄인 채 바깥세계의 희망의 소식을 듣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독일의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한 베를린 장벽을 보고 그 장벽을 빨리 없애라고 말할 때 우리도 외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외국 방송을 통해 오스트리아와 마쟈르, 체스꼬슬로벤스꼬와 뽈스까가 수만여 동독 피난민들에게 입국을 허가해 이들이 쉽게 민주주의 국가였던 서독일로 망명할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당시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의 비밀 경찰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해외방송에서 들었던 이런 내용을 누구한테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가족끼리 혹은 정말로 믿을 수 있는 친구들한테만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저의 부모님은 늘상 믿을 사람은 가족밖에 없다며 가장 친한 친구도 믿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의 복도 곳곳에서는 삼삼오오 대학생들이 모여 독일 통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TV를 통해 독일 통일의 현장을 볼 수 없었기에 서로 하나가 된 독일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망치를 들고 베를린의 장벽을 무너드리는 수천여 독일 젊은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가지 일화가 생각납니다. 1989년 10월 중순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우리집 식구가 모두 모여 로므니아와 동유럽의 상황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 때는 분명 젊은이들의 가을이었습니다. 나이든 우리들의 부모는 그 시절을 비관했지만 동유럽 젊은이들은 인간다운 삶을 살겠다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였습니다. 그해 가을 독일에서 로므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동유럽의 젊은이들은 확실히 인류의 역사의 한 순간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당시 전문가들과 일반 사람들이 한반도에도 독일과 같은 변화가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진 27년후 북한이 제2의 권력세습을 이뤘으며 개혁과 개방을 거부하며 군사도발, 핵과 미사일을 통해 세계평화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에, 번영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과 북한의 통일이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동서독은 분단된 지 44년만에 통일되었습니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68년이 지났지만, 그 전에는 남북한 사람들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포함하여 천년 넘게 같은 언어, 문화와 전통을 나누며 같은 정치체제 하에서 살았습니다.
1871년 한 국가가 되어 1945년 분단되기 전 74년의 통일된 독일의 역사는 그 천년이 넘은 통일된 남북한의 역사보다 훨씬 짧았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운명은 분명 통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동유럽처럼 독재, 탄압과 인권 유린을 극복하여 그 운명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북한의 젊은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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