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내 소식통에 의하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피임시술과 낙태수술을 금지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을 포함한 여러 국제언론에 따르면 이 지시의 목표는 북한의 출산율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또한 피임시술이나 낙태시술을 하는 산부인과의사들이나 다른 의사들이 이 피임시술 금지령에 의해 3년의 구속 처벌까지도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미혼자의 임신일 경우 낙태수술을 비밀리에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은행 통계자료에 의하면 북한의 출산율은 급속히 하락하는 것은 아니지만, 1970년부터 현재까지 지난 45년동안 계속 감소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은 1968년 천명에 신생아 약 38 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960년도부터 2013년까지 북한의 평균 출산율은 천명에 신생아 약 23명이었습니다. 북한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은 2012년으로 천명에 신생아는 약 14 명입니다. 현재 북한의 인구는 2천5백만명 정도 되며 5천만명의 한국의 인구에 비해 반밖에 안 됩니다.
북한의 피임시술과 낙태수술 금지령 소식을 듣고 냉전시대에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하던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루마니아를 떠올립니다. 1989년 12월 처형을 당한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1971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 국가주석과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또한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를 루마니아식 '주체'를 바탕으로 하는 온 주민들이 독재자를 숭배하는 북한을 닮은 독재국가로 만들려 했습니다.
그 당시 루마니아의 인구는 2천3백만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커다란 건물과 '루마니아식 주체'를 위한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재자와 아내인 엘레나는 루마니아의 인구를 2000년도까지 3천만 명으로 증가시켜야겠다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1966년 루마니아의 역사상 가장 비인간적인 법령을 포고했습니다. 루마니아의 인구와 출산율을 증가시키기 위해 피임을 불법화하려고 했습니다. 그 법령은 '임신부가 태아를 가졌어도 그 태아는 임신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온 사회가 그 태아를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그 법령은 최후의 국유화였습니다. 공산당은 루마니아 사람들의 공장, 농장이나 집을 뺏어 모두 국유화했고 남은 엄마 배속에 있는 아이까지 빼앗아 독재자와 그의 가족의 노예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루마니아 여성들에게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명령했지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수단을 주진 않았습니다. 식량과 약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쉽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많이 가지고 싶어 하지도 않았습니다.
독재자는 고등학교 내의 성교육 교재를 없앴고 그런 교재는 '국가 일급비밀'이라 여겼습니다. 당시 루마니아 약국에서 얻을 수 있는 피임 수단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피임약품이나 콘돔을 암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재자는 루마니아 여성들에게 아이를 5명씩 낳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따라서 아이를 5명이상 낳은 엄마들은 '영웅 어머니'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한 여성들은 임금의 10%까지 '독신세'라는 세금을 내곤 했습니다. 그 당시에 낙태는 불법이었습니다. 아이가 4명이상 있거나 건강이 안 좋아서 낙태를 할 수 밖에 없는 여성들만 낙태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낙태를 예방하기 위해 45세 이하인 여성들은 모두 필수적으로 한 달에 한번 산부인과 의사에게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항상 의사 옆에서 '세쿠리타테,' (Securitate) 즉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이 진찰을 직접 지켜봤는데, 루마니아 여성들이 그런 요원들을 '생리 경찰'이라고 별명 지었습니다.
불법 낙태를 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걸렸을 경우 구속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물론 불법 낙태를 하는 곳은 의료원이나 병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났습니다. 불법 낙태를 하다 문제가 생겨 응급실에 입원한 여성들은 불법 낙태를 신고하고 검사에게 응급진료 허가증을 받은 후에야 진료를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966년부터 1989년까지 불법 낙태를 하다 사망한 루마니아 여성들은 9천452명이나 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루마니아 사람들은 유혈적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려 지난 26년 동안 전환기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자유의 맛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차우셰스쿠의 '인구 증가 정책'에 의한 만여 명의 루마니아 여성들의 희생은 어두운 공산주의 독재 시대의 가장 슬픈 추억 중에 하나가 될 것입니다.
불법 낙태를 하다 출혈을 많이 했지만, 검사의 허가증이 없어서 응급조치를 못 받아 사망한 여성들은 독재자와 그의 아내에게 사형을 당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죄는 무고한 루마니아 여성들을 만 명이나 죽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혁명 때 군사 재판으로 사형을 받을 만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고 태아를 보호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가능하다면 낙태수술도 많이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키울 여유가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합니다. 또한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성생활이나 피임뿐만 아니라 가족 가치관에 대해 먼저 교육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기에는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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