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캐나다 밴쿠버에서17일간 펼쳐졌던 제21회 2010년 동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동계올림픽의 꽃'이라 불리는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에서 19세인 남한의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쇼트프로그램, 즉 2분40초를 넘지 않는 짧은 프로그램에서 2009년 자신이 세웠던 세계신기록 보다 더높은 점수를 받으며 1위를 하였고 4분간의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에서도 자신의 세계신기록을 또한번 갈아치우며 일본 선수인 아사다 마오와 캐나다의 조애니 로셰트를 이겨 올림픽 역사기록에 남을 상징적인 스포츠 선수가 되었습니다. 김연아는 7살때부터 처음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으며 1984년과 1988년 올림픽에서 두 차례 은메달을 땄던 캐나다 출신의 브라이언 오서를 만나 캐나다에서 훈련을 받으며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언론은 완벽한 기술과 예술성으로 온세계 관중을 사로잡으며 놀라운 세계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김연아를 '여왕 유나'라 부르고 있습니다.
피겨의 여왕인 김연아 선수를 보고 또다른 완벽의 여왕이 생각났습니다. 1976년 14살이던 나디아 코마네치라는 루마니아 체조 선수는 캐나다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에 출전해 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을 받았습니다. 여자 싱글 피겨스케이팅이 동계올림픽의 꽃인것처럼 하계 올림픽의 꽃으로는 여자 체조를 말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34년후인 지금도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루마니아 선수 코마네치의 사진을 볼수 있고 ' 완벽한 체조의 여왕'에 대한 많은 설명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녀는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평균대, 개인 종합, 이단 평행봉의 금메달 셋과 단체 종합 은메달 하나, 마루운동 동메달 하나를 땄습니다. 코마네치는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두개와 은메달 두개를 땄습니다. 지난 34년 동안 '체조의 여왕'이라 불리던 코마네치로 인해 여자 체조는 전 세계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그녀는 20세기 최고의 운동 선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저는 그때 6살이었지만, 지금도 1976년 7월 18일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 루마니아 사람들은 니콜라에 차우체스쿠 독재 정권하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정치 탄압, 경제 위기와 독재자 개인 숭배가 가장 심하던 1980년대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았습니다.
독재자는 자신의 개인숭배를 위해서는 많은 돈을 썼지만 올림픽이나 축구 월드컵 중계권료 같은 것은 아까워 했기 때문에 루마니아 사람들은 1976년 올림픽을 시청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루마니아 중앙텔레비전방송에서 새벽부터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을 계속 중계방송했습니다. 올림픽 체조 경기를 보면서 14살밖에 안된 코마네치가 체조의 역사를 바꿔놓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코마네치는 1975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었지만, 특히 소련의 유명한 체조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 그리 유명하진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체조 경기에서 만점이라는 점수가 나온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올림픽 체육관 액정표시기에 처음에는 10점이 아니라, 1점이라고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코마네치는 체조의 역사를 바꿔놓으며 세계 스포츠 역사에 기록을 남겼습니다.
저는 세계로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루마니아 사람이라고 하면 유명한 루마니아 조각가, 예술가, 철학자나 학자들이 많지만 외국인들은 주로 세 인물을 떠올립니다. 즉 코마네치, 독재자 차우체스쿠와 소설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루마니아 출신의 흡혈기 드라큘라입니다.
이제 코마네치는 루마니아의 가장 강력한 상징적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코마네치의 인생도 루마니아의 현대 역사와 운명과 잘 결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6년 올림픽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에 의해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후 그녀는 루마니아 독재자와 그의 아내의 명령으로 '사회주의노동 영웅'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공산주의 언론은 코마네치의 이미지를 이용해 차우체스쿠 정권을 외국에 선전하려고 했습니다.
국내에서 공산당 대행사를 할 때마다 코마네치는 공산당 간부들 앞에서 독재자와 그의 아내에게 감사의 발표를 해야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는 독재자의 큰아들 니쿠가 코마네치에게 연인으로 다가가려고 했기 때문에 힘들었고 나디아의 감독이던 벨라 카롤리와 그의 아내인 마르타가1981년 미국으로 망명을 했기 때문에 미국 국가대표팀감독이 된 후 코마네치도 망명할까봐 독재자 비밀경찰의 심한 감시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반공산주의 혁명 한달전인 1989년 11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걸쳐 미국으로 망명했고 미국에 와서 자신의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며1976년 올림픽 남자 체조 금메달을 딴 미국 선수 바르트 코너와 1996년 결혼을 했습니다. 코마네치는 남편과 체조 학교를 같이 운영하고 책을 쓰기도 하고 '세계 체조 선수'라는 잡지를 출판했습니다.
코마네치는 이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루마니아를 자유로이 다니며 루마니아 고아들과 루마니아 체조 발전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외무부 장관이나 다른 고위 인사들이 루마니아를 방문했을 때 코마네치는 루마니아 대통령과 함께 그들을 환영하는 모습이 방송에서 가끔 나오기도 합니다. 49세인 코마네치는 2006년 6월 아들을 낳으며 자신과 남편의 오래전부터의 꿈이 이뤄졌다고 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뜬 체조의 완벽 여왕이 가족을 위해서, 세계 체조를 위해서, 또 루마니아 어린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많은 일을 할 것입니다.
온세계 관중을 사로잡은 2010년 캐나다 밴쿠버 동계 올림픽 '피겨의 여왕' 김연아와 1976년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 '체조의 여왕' 코마네치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나라, 다른 세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김연아가 세계12위경제강대국이며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태어났고, 명예뿐만 아니라, 여러 제품의 광고모델로 활동하며 여러 기업들의 협찬을 받고 1년에 약 7-8백만 달러를 벌고 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로 많은 젊은 피겨스케이터들에게 영감을 줄것이고 미래는 아주 밝습니다. 루마니아 체조 선수 코마네치는 공산주의 독재에 의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자랐지만 그녀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야 비로소 인생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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