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수해지원이 싫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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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한의 수해지원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가 거부해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 10일 조선적십자회 위원장 명의로 남한의 대한적십자사 총재 앞으로 보낸 통지문을 통해 수해지원 수용 의사를 밝히면서 "지원 품목과 수량을 알려 달라"고 요구했었습니다. 남한정부는 통지문에서 밀가루 1만 톤과 라면 300만 개, 의약품 등을 지원 품목으로 제시하고, 북한이 원하는 품목은 추가로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런 지원은 필요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적십자회 대변인의 말을 통해 남한이 “보잘 것 없는 얼마간의 물자를 내들고 모독”했다느니, “쌀이나 세멘트 복구용 장비가 다른 곳에 전용될 수 있기 때문에 절대로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지원은 여론에 못 이겨 생색이나 내고 체면을 세워보려는 것이었고 남한이 인도주의 정신을 우롱하면서 치사하게 논다고 욕을 했습니다.

북한은 이번에 예년에 없는 큰 수해피해를 입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지난 6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발생한 수해로 전국에서 300명이 사망하고 600여 명이 부상·실종됐으며, 주택 8만 7천여 가구가 파괴·침수돼 29만 8천500여명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 2007년 태풍 ‘위파’로 1천20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던 이후 최대 규모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한의 수해지원을 거부한 것은 사실 식료품이나 의약품이 필요 없거나 남한의 지원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이번에 남한은 100억 원 어치의 지원을 약속했고 추가적인 물자를 요구하면 토론해보겠다고까지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은 남한의 지원을 받는 것이 자존심 상하고 주민들에게 남한의 발전상이 알려지는 것이 싫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밀가루, 라면, 약품이 주민들에게 전달되면 남한에 대한 지금까지의 선전이 거짓이라는 것이 다시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원래 북한당국은 남한의 수해지원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었습니다. 이번에 북한정부는 지원을 받겠다고 수용의사를 밝힌 이후에도 노동신문을 비롯하여 통신 방송들에서 남한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기사를 계속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수해지원 승낙의사를 밝히면서도 뭘 주겠냐는 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즉 북한은 주민들과 국제사회의 비난이 두려워 수용하겠다고 한 다음 구실을 만들어 거부한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대통령이나 몇몇 간부들이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민들의 지지와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남한주민들은 지난 기간 북한당국이 남한에서 받은 지원물자를 남한을 침공하기 위한 국방력을 강화하는데 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북한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는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지원해야 한다고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이 지원을 받으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관례로 보나 인간의 도덕으로 보아도 바람직한 것이 못됩니다.

이번 수해지원 거부는 주민들이야 먹든 말든 체제유지를 우선으로 하는 북한당국의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북한당국이 가장 무서운 것은 남한의 군사훈련이나 미국의 군사력이 아니라 남한의 발전상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증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