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인간적 모습 강조’ 김정은 신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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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신년사를 보면, 북한 주민들이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은 자신의 능력부족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김정은이 아니라 평범한 북한 사람이 최고령도자에 대해서 이러한 말을 한번이라도 한다면 그는 매우 고통스럽게 죽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을 겁니다.

김정은은 이번 신년사를 할 때 양복을 입고 김일성 휘장을 달지 않은 채, 북한 주민들이 생활총화를 할 때 하곤 하는 말을 왜 했을까요? 그는 자신의 능력부족을 인정하고, 생활총화 때 자기 비판을 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왜 했을까요? 김정은이 진짜 주민의 복지를 도와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충분한 이유가 아닙니다. 김정은은 일반사람이 아니라 정치인입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장악했고, 그에게 반대할 수 있는 고급간부와 인민군 장성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정치노선을 시작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치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인이라면 진심으로 말할 권리조차 없습니다. 정치인은 바로 이 순간에 해야 하는 말을 해야 살아남고,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상 이번 신년사는 북한 역사에서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자신이 인간다운 성격을 암시한 것입니다. 김일성이든 김정일이든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실수가 있을수도 없는 하나님처럼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북한 정치구조의 기반이라고 해도 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이 최고지도자를 보는 눈이 사람으로 보는 눈보다는, 하나님으로 보는 눈일 때만 체제가 제대로 가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김정은은 고급간부들을 겨냥하는 공포정책을 하는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보다 인간이라는 신호를 인민들에게 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북한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부인의 얼굴을 인민들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가족상황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려 주었습니다. 리설주의 등장은 지도자의 인간화 전략의 또 하나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북한 주민들이 이와 같은 새로운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 뜨거운 환영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북한 인민들은 이와 같은 지도자를 보다 더 믿고 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구소련 출신이니까 1980년대 중엽 고르바초프의 공산당 서기장 등장 배경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구소련에서 고르바초프 서기장도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을 인민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했고, 자신의 인간다운 성격을 가끔 보여주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년 동안 인민들의 반응은 매우 열광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갈수록 의심감과 불만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본 이유는 북한이 1940년대 말부터, 즉 김일성이 등장했을 때부터 북한이라는 국가는 1인독재국가로 형성되었습니다. 1960년대 말부터, 즉 당의 유일사상 10대 원칙이 나왔을 때부터 최고지도자는 잘못, 실수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 것처럼 생각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기면 그를 교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이라면, 2500만명의 북한 인구들 가운데 같은 일을 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조만간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장기적으로 말하면 지도자 인간화 노선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