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를 힘들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습니다. 물론 제일 중요한 이유는 모든 것을 국가소유로 해 온 북한의 경제구조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경제구조에서는 간부들도, 노동자들도 혁신을 하거나 기술을 향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이유 외에도 다른 추가적인 원인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김일성 시대부터 주장해 온 자력갱생 원칙입니다.
북한 사람 대부분은 이 자력갱생이란 한자 말이 김일성 주석이 처음 만들어 낸 구호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1950년대 말 중국에서 북한보다 먼저 자력갱생에 대한 언급이 훨씬 많았습니다. 북한은 이 구호를 중국에서 가져다 그대로 따라한 것입니다.
중국 모택동 주석과 북한 김일성 주석이 자력갱생의 원칙을 믿었던 이유는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오랫동안 유격대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싸워야 하는 부대생활에 익숙하였습니다. 문제는 전쟁 때나 무장투쟁 때에 다른 방법이 없어 채택했던 정책이 평시에는 좋은 정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력갱생 원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장이나 기업소, 부대나 학교에서 필요로 한 시설을 설치하고 재료를 생산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자동차 기술을 배운 기술자와 경험이 많은 노동자들이 자동차를 설계하고 생산해야 합니다. 공업 시설도 이와 비슷하고 모든 공장, 기업소에 똑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전문가들이 이와 같은 과정에 참여하게 되면 품질도 보다 우수하고 시간과 자원의 낭비 역시 줄일 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그렇게 큰 규모의 나라가 아닙니다. 북한의 인구는 중국의 대도시 인구와 비슷한 2천500만 명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 규모의 나라는 자국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생산해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성공한다고 해도 품질이 좋지 못하고 자원 낭비가 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에는 북한보다 작은 규모의 나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모두 전문화 정도가 높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들 나라는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발전해 온 기술을 바탕으로 몇 개의 산업만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한 물건을 해외로 수출하고 수출을 통하여 번 돈으로 다른 필요한 물건을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들 중 가장 좋은 사례는 스위스입니다. 스위스는 유명한 손목시계를 비롯한 정밀기계를 많이 생산할 뿐만 아니라 농업에서 치즈를 비롯한 우유 가공 사업이 크게 발달했고 금융 분야에서도 경쟁 상대가 없을 만큼 은행과 재정 사업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결국 스위스의 주민들은 일본이나 미국 사람들보다 더 부유하게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유럽에서 제일 유력한 군대 중의 하나를 보유하고 있는데 약 800년 전부터 해외 침략을 잘 막아내 왔고 자국의 독립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규모가 큰 나라일지라도 사실상 현대 세계에서 완전히 자력갱생을 실천하기란 거의 불가능 한 일일 것입니다. 원래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자력갱생 원칙을 가르쳐 준 중국도 1970년대 말 자력갱생 원칙을 실질적으로 포기하였습니다. 1970년대 말 모택동 사망 이후 중국은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여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중국도 모든 것을 생산하기보다는 자신의 문화, 기술 등에 적합한 산업을 개발하여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수출하고 이렇게 얻은 돈으로 해외로부터 필요로 하는 물건을 수입하였습니다.
물론 자력갱생이란 원칙이 북한 발전의 길을 가로막는 유일한 걸림돌이란 뜻은 아닙니다. 현재 북한 지도부 내에서도 이러한 원칙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자력갱생에 대한 터무니없는 희망과 주장을 가능한 한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은 정책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