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러시아 신흥부자는 구소련 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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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구소련 출신인 러시아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의 러시아 생활에 대해 질문을 자주 받곤 합니다. 특히 북한 사람들은 소련에서도 장사가 있었냐고 할 뿐만 아니라 소련 시대에 장사를 잘했던 사람들은 소련 체제 붕괴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물론 소련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주의 진영의 국가들에서도 장사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소련의 경우, 장사의 규모가 북한에 비하여 크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이후 북한의 시골이나 가정에서 한 사람이라도 장사를 하지 않는 집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소련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알던 사람들 가운데 장사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80년대 들어와 소련에서도 장사를 통해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소련 체제가 무너진 이후에, 그 사람들 중에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지금 러시아의 대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압도적으로 당 간부, 보위원, 혹은 군인 출신들입니다. 흥미롭게도 80년대 젊은 교수나 연구자로 지내던 학자 출신들이 많지는 않지만 꽤 있습니다. 그러나 소련시대 돈주, 즉 비공식적으로 돈을 잘 벌던 사람들 출신은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 시대에 장사를 했던 사람들이 배운 기술과 솜씨는 시장경제로 바뀐 러시아에서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간부와 연락하고, 누구에게 뇌물을 줘야 하고 이런 저런 규칙을 위반해도 되는지에 대해 알았지만 합법적인 사업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련 시대 부자들은 역설적으로 시장경제에 적응하기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반대로 간부들은 너무나도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그들은 합법적인 사업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술을 사회주의 시대에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국가소유재산을 통제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소유물을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만들었습니다. 바꾸어 말해 그들은 국가재산을 관리했던 사람들로서 국가재산을 제일 쉽게 훔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러시아의 대기업을 보면,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소유주가 소련 시대 해당 기업소의 지배인이나 당 비서로 지내던 사람들입니다.

학자와 다른 지식인들의 경우도 많지는 않지만, 대기업의 주인이 된 경우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실제 경험이 별로 없었지만 시장 경제의 이론에 대해 잘 알고, 국제 시장에서도 외화벌이를 하는 방법을 학교에서 책으로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가 생기자마자 이러한 지식을 활용하여 사업을 시작하고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성공한 학자출신 대부분은 실권을 유지한 당 간부출신 공무원들과 많이 결탁하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당 간부 출신들이 장사꾼들보다 젊은 교수들과 더 쉽게 협력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의 경우, 시장화는 장사꾼들의 성공보다 공산당 간부나 보위원들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도 러시아에서 특권계층, 지배계층으로서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