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북, 소련을 배워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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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 소련 사람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북한과 소련을 비교해서 설명해 달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현재의 북한을 보면 과거 소련의 모습과 유사하지 않느냐는 것이 질문의 요지입니다. 이것은 참 재미있는 질문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기도 합니다.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까닭은 과거의 소련과 현재의 북한은 경제, 정치, 사상 등 각 분야에서 너무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도 아주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구 소련에서 볼 수 있었던 변화가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진행되는 속도는 분야에 따라 다릅니다.

사상과 정치면에서 생각해보면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1950년대 초 소련의 상황과 아주 비슷합니다. 사회의 분위기를 보면 현재의 북한은 1970년대 소련과 유사합니다. 경제를 중심으로 본다면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북한의 사상과 정치 부분을 살펴보면 스탈린 시대 소련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국가의 힘만을 강조하면서 민족 제일주의, 군사력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1950년대 소련의 정치상황과 닮았습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란 것도 사실상 스탈린주의 사상을 본떠서 만든 것입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의 북한은 1960년대의 소련과 비슷합니다. 1950년대까지 소련사람 대부분은 국가 선전을 그대로 다 믿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들어와 소련 인민들은 당국의 선전을 점차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공산당 정권과 사회주의 제도에 대해서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대부분의 소련사람들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더 잘 산다는 사실과 소련에서는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심하고 간부와 서민의 격차가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현재 북한주민의 생각도 같은 단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에서 김정일 정권을 내놓고 반대하는 세력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신문이 주장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도 별로 없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북한주민들의 정권에 대한 공포감도 조금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요즘도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 외부세계의 소식에 대해서 지난날 보다 훨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 소련에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진 다음 주민들에 의한 자유시장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충분한 월급을 받지 못하는 소련 사람들은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필요한 생활비를 벌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당과 국가기관의 간부들은 국가의 재산을 훔쳐내 팔거나 아니면 국영 공장을 자기 개인기업소처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서민들은 가내공업이라도 해서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북한에서 바로 이런 사회-경제적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북한주민과 당국자들이 앞으로 북한이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싶다면 과거 소련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