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조선 민족'이라는 국가의 허상

0:00 / 0:00

북한 정권은 사회주의에 대해 운운하는 것이 더 이상 주민들에게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보다 민족주의를 강조합니다. 북한에는 우월한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있다는 것이 이전의 주장이었다면 지금은 김정일 정권이 조선 민족을 상징한다고 요란하게 선전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별로 근거가 없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소련출신 러시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소련 국민들이 김일성,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보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60년대부터 소련사람들에게 북한은 웃음거리에 불과한 나라였습니다.

소련사람들이 북한을 우습게 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북한 정권이 실시한 선전 때문입니다. 70년대부터 북한은 소련에 화보를 비롯한 다양한 선전용 출판물을 싸게 배포했습니다. 시간 때우기 용으로 읽을거리가 필요한 이발소 등에서 이런 북한 출판물을 구독했는데 소련 사람들은 이것을 우스운 만화처럼 생각했습니다. 잡지에는 믿기 어려운 주장도 많았고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 내용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70-80년대 소련시대 사람들에게 북한은 야심 많은 세습 독재자가 세습하는 빈곤한 국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진 뒤에도 북한에 대한 이런 생각은 별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김정일 정권을 찬양하는 러시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러시아 국내에서 영향력이 거의 없는 작은 단체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은 북한 정권과 첩보기관에서 몰래 돈을 받고 앵무새처럼 그들이 시키는 대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남한에 대한 인상은 어떨까요?

소련 사람들은 당시 북한을 웃음거리로 생각했지만 남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단지 가난한 독재 국가인 줄만 알았고 70년대 말까지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80년대에 들어와 남한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소련에서도 일본, 독일, 미국 수준을 능가하는 남한 제품들이 많이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소련과 남한이 수교한 이후 많은 소련사람들은 남한에 가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선진국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20년 동안 이런 남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더 많이 확산되었습니다.

또 우리 러시아 사람들에게 남한의 고급 기술과 품질 좋은 소비품들만 소개된 것이 아닙니다. 남한 영화와 연속극을 자주 보고 남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쉽게 말하면 러시아 사람들에게 코리아라는 말은 남한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남한은 고급기술, 발전된 공업, 매력적인 문화를 상징하는 나라입니다. 반대로 북한은 여전히 세습독재가 통치하는 이상한 국가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러시아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인들에게 한반도의 수 천년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진짜 코리아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