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통일이 주는 환상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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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언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곤 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보다 자신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빈곤한지 알게 된다면 북한 체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한 언론은 해외 여러 국가에 대한 진실을 가리고 자신들의 체제를 포장해 주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대목을 우려합니다. 조만간 김정일 체제는 무너질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수준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불만족이 바로 붕괴의 주된 원인이 될 겁니다. 바꿔 말해 주민들은 체제가 무너지면 그들의 생활이 훨씬 나아질 뿐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곧 비슷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 역시 또 다른 환상입니다.

물론, 북한의 비효율적인 사회, 경제 제도가 무너지면 지금보다는 생활수준이 많이 높아지겠지만 남한의 생활수준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남북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일상생활을 본다면 낙원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남한에서는 어렵게 살아도 매일 쌀밥과 고깃국을 먹을 수 있고 노동자의 아들, 딸들이 외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습니다. 자가용 승용차도 없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남한의 농민조차 이북 도당 지도원보다 잘 삽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인 성공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1960년대, 남한은 북한보다 어렵게 살았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합리주의적이면서 효율적인 경제 제도를 택했고 또 많은 고생과 노력을 통해 마침내 이런 풍요로움을 이뤄냈습니다.

이런 성공을 이뤄낸 남한 사람과 북한은 한 민족입니다. 따라서 북한 사람들도 60년대 남한 사람만큼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성공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체제입니다. 좋았건 싫었건 북한 주민들은 시대착오적인 정치, 사회 제도에서 자랐고 때문에 현대 세계에서 필요한 기술과 솜씨가 모자랍니다. 이런 새로운 정치 사회 제도와 새로운 기술 수준을 습득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통일이 되면 남쪽은 적지 않은 수준의 원조를 하겠지만 원조만으로 경제 수준을 남한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이 원하는 생활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북한 언론 주장과 달리 남한이 잘 살다는 것은 환상이 아닌 사실입니다. 그리고 남북이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나아진다는 것도 환상이 아닙니다. 그러나 통일 이후, 남북의 경제 격차가 없어지고 똑같이 잘 살게 될 것이라는 건 환상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이 사실을 잘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지나친 희망과 환상이 초래하는 것은 더 큰 실망과 분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