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국회의원으로 거듭난 '통일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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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는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습니다. 새로 당선된 국회의원들 중에는 북한사람들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임수경입니다.

아마 북한에서 임수경만큼 잘 알려진 남한 인물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1989년에 임수경씨는 평양에서 열린 제 13차 세계 청년학생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한국 외국어 대학교 학생이었던 임수경은 남한 당국자들의 반대와 경고를 무시하고 남한 청년학생 대표로 평양을 방문했습니다.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후에도 여러 북한 도시를 방문하고 북한에서 46일 정도 머물렀습니다.

그 후에 임수경씨는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넘어서 남한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남한에 돌아오자마자 남한 당국은 그를 체포했습니다. 당시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북한 사람들은 임수경씨에 대해 크게 동정했습니다. 그들은 북한처럼 정치범으로 체포된 사람은 처형되거나 수용소에 들어가 살아서는 나올 수 없을 줄 알았습니다.

물론 북한주민들이 남한의 현실을 잘 모르니까 그런 걱정을 한 것입니다. 임수경씨는 1992년에 석방 되었습니다. 그 후에 남한 사회도 많이 바뀌고 민주화가 대폭 진전되어 임씨는 1999년에 사면복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989년에 평양방문에 대한 면죄부를 남한정부로부터 정식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북한 언론은 90년대 중반 이후 임수경에 대한 보도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북한 사람 대부분은 임수경씨가 이미 죽었거나 지금까지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은 틀렸습니다. 90년대 초 석방된 임수경씨는 기자가 되었습니다. 남한의 여러 진보 단체에 소속되어 기자로 활동해왔습니다. 기본주제는 남한 노동운동, 좌익운동입니다. 북한에 대한 지지를 그대로 계속하고 2001년에 다시 한 번 북한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북한 언론은 임수경의 북한방문을 제대로 보도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럼 80년대 말 북한언론에 의해 통일의 꽃으로 극찬을 받은 인물 임수경이 2001년엔 왜 그렇게 무시당했을까요? 여러분은 임수경씨가 전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사실상 그렇지 않습니다. 임수경씨는 지금까지 북한을 지지하는 소수의 남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상 지난 20년 동안 그의 정치 사상은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선전 일군들이 임수경씨에 대해서 선전하지 못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친북 통일 운동을 하고 북한을 지지하던 남한사람이 아직까지도 남한에서 자유롭게 활동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가 두려웠던 것입니다.

북한에서 남한에 대해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까지 된 임수경씨의 경우를 알게되면 너무나 많은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 뻔합니다. 따라서 북한 언론은 통일의 꽃이 남한에서 이룩한 정치적인 성공을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릴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