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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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 주민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부분 비슷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잘 아는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즉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라는 젊은 지도자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실망은 여전히 크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공통된 의견은 현재의 북한 정권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있으며, 북한의 어려운 상황들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북한 주민들의 이러한 주장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형편을 보면 상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평양 주민들뿐만 아니라 시골조차도 15년 전에 비하여 생활형편이 개선되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처럼 생각됩니다.

1990년대 말에는 수십만 명의 아사자들이 생길 만큼 엄청난 기근이 있었지만 현재 북한의 시골까지도 강냉이밥이라도 먹으면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살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의 부자들은 집에 세탁기와 냉장고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오토바이까지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입은 옷차림도 1990년대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은 무엇 때문에 여전히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상식과 달리 인간에게는 '절대적인 빈곤'보다 더 큰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 바로 '상대적인 빈곤'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웃집이나 이웃 나라들이 자신의 집이나 자신의 나라보다 더욱 잘 살고 있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빈곤하다고 느끼게 되는 경향을 말합니다. 이웃집에 자가용 차가 있으면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은 자신이 못사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고 이웃집에서 최고급 자동차를 타면 평범한 자동차를 타는 사람도 자신이 빈곤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난 15년 동안 북한 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 나아졌다는 것은 부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중국과 남한 등 이웃 나라들이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북한보다 얼마나 잘 사는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북한 주민들이 남북한 생활 수준의 차이를 진짜 알게 된다면 매우 심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은 남한의 생활 수준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중국의 생활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1980년대 초까지 북한보다 어렵게 살던 중국은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인하여 매우 발전하였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의 생활을 생각할 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비교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고난의 행군 시대도 일제시대 생활도 아닌 현재 중국의 생활과 북한의 생활 수준입니다. 그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심한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좀 더 확장해 보면 이 같은 북한주민들의 불만이 북한 내부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혁명이나 인민 봉기 기근이나 절대 빈곤 때문에 발생하는 것보다 주민들이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 즉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자신들이 못 산다고 생각할 때 봉기하게 됩니다.

제가 젊었을 때 구소련(러시아)에서 아주 비슷한 현상을 겪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1970년대 소련은 그리 살기가 어려운 나라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소련 주민들은 미국이나 서유럽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불만이 매우 컸습니다. 그 결과 소련 체제는 결국 붕괴되었습니다.

북한 지배 계층은 이와 같은 역사의 교훈을 바로 알고 체제위협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제 성장을 더욱 가속화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북한 체제는 언젠가는 내부 불만에 의해 그 존립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