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손전화와 컴퓨터의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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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경제가 점차 좋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제일 잘 보여주는 것은 컴퓨터, 그리고 손전화의 확산입니다. 평양을 비롯한 북한 대도시의 많은 사람들이 손전화를 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컴퓨터는 그리 많지 않지만 잘 사는 집이면 컴퓨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현상에 대해 꽤 놀라워합니다. 북한 전문가들이 컴퓨터와 손전화의 확산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러한 확산이 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의 기반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북한 정권이 가장 무섭게 생각하는 것은 검열과 통제가 불가능한 정보의 확산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어야만 북한체제유지가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은 손전화와 컴퓨터를 왜 금지하지 않았을까요? 금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왜 이 확산을 오히려 촉진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제가 보기에 이 같은 정책은 북한 지배계층의 사고방식 가운데 한 가지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른 공산주의 국가를 봐도 매우 비슷한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현대 기술에 대한 지나친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공산주의 정권은 처음 얼마 동안은 비교적 체제 유지를 잘 하다가 곧 만성적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구소련에서도, 중국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만성적인 위기를 초래한 이유는 비합리주의적인 경제구조 및 사회관계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산당정권은 이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 국가 지배계층이 이 사실을 인정했더라면 공산정권의 정당성도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경제를 바꾸는 개혁뿐입니다. 그러나 공산당 지도부는 체제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개혁을 하는 것보다 기적과 같은 기술에 대한 희망이 더 컸습니다.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은 어려운 경제 문제를 기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소련에서 스탈린은 이와 같은 기적이 과학적 방법이 거의 없는 농업에서 발생하기를 희망하고 다양한 농업 방법을 대폭 지지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1950년대 말, 이른바 대 약진을 했을 때 농업기술, 또 작은 제철소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북한도 이와 비슷합니다. 북한 지도계층은 CNC(computer numerical control, 컴퓨터 수치 제어)와 컴퓨터를 통해서 체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는 너무나 단순한 희망입니다. 북한 체제의 문제는 기술이 부족하거나 없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현대기술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합리주의적인 사회관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 지배계층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CNC와 컴퓨터의 대중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청난 착각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의 그 착각 덕분에 북한 주민들은 제한적이나마 새로운 정보관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