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통일의 저해요인

0:00 / 0:00

저는 얼마 전까지도 한반도 통일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통일이 멀어 보이기는 하지만 조만간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저는 남북회담과 타협을 통해서 통일이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북한 국내정치의 변화와 불안정에 의해서 초래된 통일을 거의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옛날만큼 통일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이 이렇게 바뀌기 시작한 이유는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경제성장 때문에 외교 영향력을 많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중국은 자체적으로 결정만 내린다면 한반도(조선반도)의 통일을 가로막을 능력이 충분합니다. 물론, 중국이 통일을 방해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 같은 영향력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입니다. 남한 젊은이들의 통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관심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통일을 경제적으로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경향이 커집니다. 많은 여론조사의 결과가 남한 젊은이들의 유감스러운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고, 남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중에도 통일에 대한 우려와 불만을 많이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남과 북은 같은 민족입니다. 그렇지만 남북관계가 완전히 차단 된지 60여 년 되었습니다. 남한 젊은이들에게 북한은 어떤 추상적인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북한에 여전히 가족들이나 친척들이 있지만, 그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는 남한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평양의 잘 사는 간부의 아들이 양강도 시골에 사는 6촌 동생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 그 6촌 동생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까요? 좋건 싫건 간에 남한 젊은이들에게 북한사람들은 이렇게 먼 친척 동생들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남한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은 물론 태국이나 베트남, 그리고 여러 유럽국가들을 북한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해마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남한 사람들은 1,700만 명이 넘습니다. 중국, 일본, 미국을 방문하는 남한 사람은 매년 수 백 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북한을 가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남한사람들의 남북한 경제수준 차이에 대한 인식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지만, 생활 양식이 아주 다르고 경제가 낙후한 빈곤 국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조건들 때문에 남한 사람들은 통일을 경제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지게 되는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통일의 쓰디쓴 경험이 남한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동서독 경제격차는 남북 경제격차보다 미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부자국가인 서독의 크나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한다면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이것은 너무 근시안적인 입장입니다. 통일 직후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만 일단 경제문제를 극복한 다음에는 통일 한국이 잘 사는 나라, 잘 사는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유감스러운 점은 남한 젊은이들이 그리 머지않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풍요로운 생활을 희생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다행히 남한의 많은 정치세력들은 남한 젊은이들의 이와 같은 의식 변화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보수세력도 진보세력도 통일이 현재 한국의 최고 목표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우려와 반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 정치세력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대로 지속된다면 20~30년 후에는 남한에서 통일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정치세력과 정당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은 빨리 올수록 좋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