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경제개혁과 체제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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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라는 젊은 사람이 북한 지도자로 등장한지 벌써 5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동안 북한에서 어려운 문제가 없지는 않았지만 북한의 경제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상황의 개선은 김정은 정권의 중요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제 개선과 경제 발전이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북한당국은 말로는 개혁을 미친듯이 비난하면서도 경제부문에서만큼은 1980년대 초 중국이 시작했던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북한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업 부문에서 2013년부터 포전담당제를 실시하기 시작했고, 가족단위로 이루어진 분조를 중심으로 하는 농업관리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이것은 1970년대 말 중국 농업개혁의 시작단계와 매우 유사한 조치입니다. 결국 북한 농업 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식량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지만 1990년대 중반 같은 대기근이 발생할 가능성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공업 부문에서도 독립채산제를 비롯한 새로운 정책으로 경제일꾼들은 자율성을 많이 인정받았습니다. 사실상 북한 정부는 사회주의를 여전히 운운하고 있지만, 시대착오적인 국가사회주의 경제, 즉 중앙계획경제를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도 1980년대 초의 중국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

아마 제일 중요한 것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 시장경제 활동에 대한 단속이 많이 느슨해지고 북한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택건설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국가기관과 돈주로 알려진 새로운 부자들이 많이 협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도 중국의 초장기 개혁과 비슷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북한의 경제개혁에는 문제점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의 경우 해외투자 유치가 경제발전의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해외투자 유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해외투자를 가로막고 있으며 또다른 이유는 북한이 다른 나라 기업과 맺은 약속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큰 틀에서 말하면 김정은 시대의 북한정책이 중국식 개혁, 즉 단계적인 시장화 정책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이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제가 벌써 여러 번 말한 바와 같이 북한 지도부는 경제발전을 하는 동시에 국내 정치의 안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인민대중이 사상분야에서도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체제에 대한 동요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좋든 싫든 이 같은 사상부문에서의 변화는 북한당국 입장에서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사실상 개혁을 하고 있지만 이 공공연한 비밀을 절대 공식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모순은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경제체제가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북한 돈주들 사이에 이런저런 문제에 대해서 대립이 생긴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관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상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재판소를 찾아가지만 북한의 경우 개인사업을 관리하고 규정하는 법조차 없기 때문에 재판소로 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법률이 없기 때문에 개인자본가들이 노력을 합쳐서 주식회사와 같은 집단자본주의 회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체제유지와 경제개혁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현 단계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아직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지난 4-5년동안 북한 경제가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