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에 북한 언론은 사회주의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의 모습을 악몽처럼 묘사하였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린 노병들 이야기,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파는 아가씨들 이야기, 북한 꽃제비처럼 거리에서 거지생활을 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뤘습니다.
그러나 북한 선전매체가 전한 이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장된 이야기였습니다. 1990년대의 러시아 과도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90년대 말에 접어들어 러시아 경제가 완전히 자본주의 성격을 띄게 되면서부터 그 전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90년대 말부터 러시아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가 세계 시장에서 유가가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소련의 역사를 보았을 때, 유가가 비싼 시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련의 경제가 이만큼 빨리 성장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 북한 언론은 러시아에 대한 보도를 할 때, 예전과 달리 러시아를 자본주의 지옥처럼 묘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 러시아는 1990년대의 러시아보다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 언론은 러시아가 부유한 나라가 되었고 필요하다면 세계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어용기자들은 러시아의 경제 성장을 초래한 것이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지금 러시아 국내 상황을 보면, 소련체제의 붕괴를 후회하는 국민들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북한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그들이 후회하는 것은 소련식 경제구조나, 공산당을 중심으로 하는 일당독재나 권위주의가 아닙니다. 소련 사람들이 후회하는 것은 바로 소련시대에 존재하던 초강대국의 역할입니다. 이러한 후회와 실망은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합병 및 서방과의 대립에 대한 높은 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러시아의 새로운 대외전략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러시아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준 것은 바로 경제발전입니다. 이와 같은 경제적 성공은 시장경제의 채택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든, 북한이든 혹은 어떤 국가이던지 간에 자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강화하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경제 부문에 있어 고도성장을 이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세계에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은 시대착오적인 봉건제나 중앙계획적 체제를 모두 제거하고 시장경제를 도입하는 방법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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