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칼럼] 김정일 사망과 권력 세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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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의 죽음이 갑작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지난 3~4년 동안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은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3대 세습을 늦게 시작했고 결국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김정은이란 사람은 아직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인정을 받지 않았습니다. 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그 때문에 북한 국내 안정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김정은의 젊은 나이와 불확실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당장 권력을 세습하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북한 고위 특권계층을 지배하는 논리 때문입니다. 2천3백만 명 북한 주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특권층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체제유지입니다. 그들은 국내정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분단 국가인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체제붕괴는 곧바로 민주 혁명과 남한에 흡수통일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북한 특권층의 입장에서 흡수통일은 악몽입니다. 남한에 흡수 통일이 된다면 당 중앙 비서나 인민군 대장과 같은 사람들은 특권과 권력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중 하급 간부들은 통일을 꼭 무서워할 필요는 없을 것 입니다. 하지만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특권층에게 체제유지는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김정은을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우리는 김정은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북한 특권층들에게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김정은의 개인 성격이나 사람됨과 무관하게 그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익숙한 백두산 줄기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사실 김정은은 북한정치에 별 영향력이 없다고 하더라도 북한 특권층이 필요한 인물로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지도부의 정당성 및 단결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한지도부 내에도 김정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그들이 김정은에 도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호사를 누려온 북한 특권층은 자기들끼리 단결을 유지해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김정은은 바로 이와 같은 특권층들의 단결을 상징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든 누구든 개혁과 개방을 하지 않으면 북한 체제를 살려내지 못합니다. 조만간 경제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북한 국가의 존립기반이 흔들릴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김정은의 순조로운 권력세습 자체가 북한 특권계층의 생존 전략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