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내막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장성택의 숙청을 설명하는 여러가지 가설이 생긴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장성택을 개혁을 시도한 사람으로 보고 그의 숙청이 북한이 중국식 시장개혁의 길로 가는 것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북한 공식발표에서도 장성택을 개혁을 꿈꾸는 수정주의자로 묘사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주장을 상당히 의심스럽게 생각합니다. 장성택의 정치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는 개혁파이냐 보수파이냐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이 취해온 여러 정책의 방향을 감안하면 장성택 실각은 개혁주의에 대한 경고와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여름부터 북한은 비교적 온건한 개혁 정치를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북한 당국자들은 '개혁'이란 말을 절대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의 내용을 보면 1970년대 말에 개혁정책을 시작한 중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올해 여름부터 농업에서 시행하는 '6.28방침'입니다. 무역부문에서도 외국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 11월부터 14개의 경제특구가 설치됩니다. 공업부문에서는 독립채산제가 많이 강화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적인 변화들은 장성택의 힘이 많이 떨어진 올해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들 경제개혁 정책들이 장성택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사실상 장성택의 영향력이 약해질수록 개혁 경향이 더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 북한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는 "장성택이 내각중심제•내각책임제 원칙을 위반하면서 나라의 경제사업과 인민생활 향상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의 변화를 추진하려는 세력은 다름이 아니라 박봉주 내각총리를 비롯한 내각 세력입니다.
물론 장성택에 대한 숙청은 정치노선 문제와 별 상관이 없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거의 순수한 권력다툼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장성택의 숙청은 북한에서 시장화를 지향하는 개혁의 종말이라고 하기보다는 시장개혁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장성택의 처형이 상징하는 공포정치가 개혁정치와 호환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북한 개혁의 미래를 고려하면 북한식 개혁은 유감스럽게도 한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분단국가인 북한의 경우, 중국과 비슷한 경제개혁을 도입해도 경제개혁이 정치적인 자유화를 초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개혁과 개방 덕분에 정치 분위기는 많이 완화되었습니다. 아직도 중국을 민주국가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북한이나 1970년대 중국보다 현 중국은 자유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북한에서 사회 경제적인 변화가 시작한다면 북한 민중은 외부 생활, 특히 남조선 생활에 대해 많이 배우고 체제에 대한 불만을 느끼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 지도층은 중국식 경제개혁을 시도하면서도 공포정치를 포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장성택의 숙청이 북한이 경제개혁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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