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한 경제파탄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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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들을 통해 알아보면 역대 북한 최고 지도자들 가운데 인기가 제일 높은 사람이 김일성 주석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다수 북한 주민들의 상식은 김일성이 나라를 만들고 김정일이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김일성 주석이 1994년에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고난의 행군도 없고 경제난도 이렇게 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주장을 들을 때마다 웃기만 합니다. 사실상 북한이란 나라의 어려움과 곤란을 야기한 근본 원인은 김정일 위원장의 정책보다 김일성 주석의 정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젊었을 때에 김일성은 나라의 독립과 행복을 위하여 싸웠던 사람입니다. 북한 선전은 그 성과를 많이 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항일 운동의 탁월한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많은 애국투사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1940년대 김일성은 스탈린과 소련군에 의해 건국된 북한이란 국가에서 최고 지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에 소련은 북한에 소련식 국가사회주의를 적용하려 노력했으며 김일성 주석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련식 사회주의는 심각한 문제점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계 역사가 잘 보여주듯, 이러한 경제 체제가 15년이나 20년 동안 노동 및 자원의 동원으로 말미암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지만, 그 후에 거의 불가피하게 경제 침체를 가져옵니다. 소련이든 동독이든 불가리아이든 이러한 경향은 소련식 사회주의를 해본 나라마다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북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950년대 말까지 김일성 주석은 소련에 도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주의 경제 정책을 실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 이후 소련의 통제에서 벗어나간 다음에도 이러한 소련식 국가 사회주의는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1970년대 말부터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국가 사회주의의 약점을 인정하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시장 경제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경험을 잘 아는 김주석은 국내 안정 유지를 경제성장과 인민의 복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식 개혁을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이 1990년대 초 경 제 위기를 맞게 된 정책이었습니다.

농업에서 협동농장을 유지한 것은 매우 비극적인 후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김일성주석이 중국의 경험에서 배우고 협동농장을 해산했더라면 수십만 명 아사자들이 생긴 기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주석은 사망할 때까지 협동농장 개혁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경제가 김정일 위원장 시대에 완전히 무너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재앙의 원인을 따져본다면 김일성 주석이 실시했던 문제점이 많은 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