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인 1997년 2월 초순, 매우 갑작스러운 소식이 타전됐습니다. 조선노동당 국제 담당 비서 황장엽이 북경에서 귀국을 거부하고 남한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모두 예상치 못 했던 사변이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주체사상이 김일성이 개발한 사상인 줄 알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주체사상을 창시한 사람이 1960년대 숙청을 당했던 김창만이며 주체사상을 정리한 사람이 황장엽 비서임이 잘 알려져있습니다. 사실상 주체사상을 개발한 사람 중 하나가 망명한다는 소식은 매우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 황장엽 비서가 망명한 이유는 확실하지 않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실망이 주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95-1996년에 북한에서 발생한 기근을 목격했고, 북한과 비슷했던 공산주의국가들의 붕괴를 보기도 했기 때문에 북한체제에 미래가 없다고 판단해 탈북을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탈북 이후 망명생활을 한 황장엽 비서는 생각보다 힘이 별로 없었습니다. 한 가지 이유는 당시에 남한 정부가 황장엽의 망명을 받아들였지만 그의 정치 활동은 제한했습니다. 1997년 말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 즉 햇볕정책을 추진 중이었기 때문에 남한 국내에서 김정일 정권을 반대하는 세력을 지지할 의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황장엽 비서는 북한 최고급 간부계층 출신이지만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른 북한 간부들처럼 가끔 해외로 출장을 갔던 경험이 있지만 세계 정세를 잘 몰랐고 남한 사회와 정치를 이해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북한에서 남한으로 망명해 온 사람들은 매우 다른 모습입니다.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이 고급 간부들을 겨냥하는 대규모 숙청을 했기 때문에 옛날보다 훨씬 더 많은 간부들이 망명의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어떤 경우 그들의 망명은 화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경우 간부의 망명은 일반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작년에 망명한 북한 외교관이 10여 명 있다는 것이 알려지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황장엽시대 북한 간부들과 매우 다릅니다. 그들은 고립된 북한 사회에서 자라났지만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남한 사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조용하게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남한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면 1990년대 말 황장엽 비서와는 다르게 시대착오적인 주체사상이나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현대정치와 경제이론을 잘 알고 있고 현대식 정치단체를 조직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남한 사회의 약점과 장점을 잘 알고 있으며 머지않은 미래에 그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활발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남한 사람들 그리고 세계가 그들의 행보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