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개방 없는 개혁 성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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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보도를 보면 북한 양강도에서 미국 영화를 관람했다는 이유로 학생 15명이 공개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소식은 다시 한번 김정은 체제의 기본적인 모순을 보여 줍니다. 한편으로 보면 김정은 정권은 개인 경제활동에 대한 규제를 상당히 줄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경제 자유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김정은 정권은 정치적인 감시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김정은 시대 이후 개인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살기가 좋아졌습니다. 돈 많은 돈주이든 장마당에서 자신이 만든 두부를 파는 중년여성이든 당국의 단속에 대한 공포가 많이 없어졌습니다. 간부나 보안원들에게 뇌물만 제대로 준다면 장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를 보면 모습이 매우 다릅니다. 김정일 시대에 비해서 한국이나 미국 영화를 시청하다 적발된 사람들에게 훨씬 무서운 처벌을 주기도 하고 탈북자들의 길을 막기 위해서 국경경비를 강화하고 해외로 나간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감시도 예전보다 훨씬 엄격해졌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숨은 의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해외에서 유학했고 현대 세계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주체사상이나 공산주의 이론을 별로 믿지 않고 시장경제만 나라의 성장과 발전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같은 입장에서 보면 북한 지배계층의 세계관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세계관과 아주 유사합니다. 중국도 공산주의를 운운하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보다 더 확실한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시장경제의 힘을 잘 이해하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2-3년 전부터 북한의 경제를 조용하게 시장화시키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개혁이란 말은 절대 쓸 수 없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게 1970년 말 중국과 비슷한 개혁을 조심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이 겪지 않았던 어렵고 위험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 도전은 같은 민족이면서 북한에 비해 너무 잘 사는 남한이란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풍부하고 자유로운 남한이 없었더라면 북한 지도부는 이미 김일성 시대에 개혁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남한이 있기 때문에 변화에 대해서 매우 걱정스러워 합니다. 북한 인민들이 남한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된다면 김정은과 그 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해 실망을 느낄 뿐만 아니라 나라의 통일을 요구하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의 경우에는 개방과 민주화가 중국에서처럼 경제기적을 초래하기보다는 과거 동독처럼 체제 붕괴 및 흡수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 때문에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세습 지배계층은 시장화를 통해서 경제를 살리려 노력하는 동시에 정치 부분에서는 유일사상을 여전히 유지하고 해외의 정보 유입을 어떻게든 가로막아야 합니다.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가 없어야 북한 내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개방이 없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정치 시도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김정은 입장에서 보면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