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개혁 안해 인민 굶겨죽인 김정일

0:00 / 0:00

지난 2011년 12월에 북한 세습통치자인 김정일은 사망했습니다. 1942년에 구소련의 하바롭스크 근처에서 태어나서 1946년에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김정일은 사회주의 진영 역사에서 최초로 세습통치자가 되었고, 1994년 자기 아버지의 사망 이후 17년 동안 북한을 다스렸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생일을 큰 명절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거짓말이 가득 찬 명절입니다. 사실상 거짓말인 백두산 밀영에서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가 어린시절부터 천재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는 인민들이 흠모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김정일이라는 사람의 배경, 기본 성격을 알게 되면 이러한 주장에 모순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김정일이 지도자가 된 이유는 김일성의 장남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보다 예술, 특히 영화를 좋아했습니다. 1945년까지 소련군대 대위였던 그의 아버지가 해방 후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러시아에 군관으로 남아 있었더라면,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물론 소련 국민으로 자라나서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됐을지 모릅니다. 그의 이름은 물론 유라 킴이 되었을 것입니다. 나라를 통치하던 때에도 김정일은 경제나 정치 문제를 토론하는 것보다는 예술과 영화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됩니다.

사람으로 보면 김정일이라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보다는 그래도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근거가 있습니다. 그가 지도자가 되었을 때 연좌제를 거의 없애버린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 독재자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독재자와 가까워질수록 목숨이 위험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김정일의 북한은 정반대입니다. 물론 심화조 사건도 있고 불쌍한 서관희 비서사건도 있었지만 김일성이나 김정은 시대에 비하면 김정일 시대에 통치자와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처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기본목적은 체제 유지였습니다. 그때문에 그는 할 수 있었던 개혁도 안 했습니다. 1996년에 시작한 기근은 북한 사람 대부분의 생각과 달리 김정일의 책임만은 아니었습니다. 수십만 명의 아사자들이 생긴 기근을 초래한 것은 김정일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김일성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그의 아버지가 만든 위기를 관리하는 데에는 실패했습니다. 1995-96년 북한 농업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바로 농업개혁입니다. 1970년대 말 중국처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했던 체제를 폐지하고, 농민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농업을 시작했더라면 아사자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2012년부터 김정은 정권은 6.28방침을 정하고 이러한 개혁을 시작했는데, 식량난을 거의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이러한 정책을 거부하였습니다. 물론 기본 이유는 국내 정치 안전에 대한 우려입니다. 김정일과 그 측근들은 개혁을 시작한다면,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줄 알았습니다. 그때문에 그들은 아무 개혁을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긴 장마당, 즉 시장경제를 단속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말하면 1990년대 기근이 시작되었을 때 개혁을 시작하려 하지 않은 것이 김정일의 제일 큰 실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살릴 수 있는 인민들의 생명을 희생시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