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문제들 중 남북통일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북한과 남한의 언론이나 정치인들의 선언을 보면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요즘 남한 사회의 변화를 보면 통일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점차 생기기 시작합니다. 북한은 남북한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조만간 통일을 이룰 수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북한은 사실상 민족을 문화나 정치 공동체 보다 거의 생물학적인 공동체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 북한은 남북한이 핏줄과 언어 및 역사가 비슷하므로 통일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계의 역사를 보면 언어와 핏줄이 비슷했던 나라들도 몇 개의 나라로 갈라진 전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남미 20여 개의 국가는 모두 동일한 스페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서로 같은 민족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칠레나 페루는 비슷한 역사 배경에도 불구하고 민족 단결성이 아닌 서로 적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닙니다. 중동에는 역사와 언어가 비슷한 아랍 국가가 20여 개 이상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협력보다는 경쟁과 대립 정신이 더 강한 사례가 많습니다. 이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의 역사가 잘 보여주듯이 민족성은 피부나 언어뿐만 아니라 비슷한 역사 배경과 동일한 생활 경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해외 세력의 간섭이나 다른 세력으로 갈라진 민족이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통일을 다시 이루지 못한다면 분단이 계속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북한과 남한에서도 몇 번의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사람들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지금 남한 사회는 북한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점점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대로 수십 년간 더 지속된다면 남북통일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를 이어 한반도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 후손들의 장기적인 이익을 감안한다면 통일은 매우 필요한 변화입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통일이 경제적 어려움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보다 더 잘 사는 나라를 위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과 소원이 남아있어야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점차 약화되는 남북 민족의 연대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물론 남북 정권이 서로 대립하고 한반도 상황이 긴장되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남북 교류를 다시 시작하여 활발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강산 관광 사업이나 개성 관광 사업은 사실상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를 직접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분단의 비극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지금 남북한 정부는 여러 이유로 인하여 이러한 관광 활성화 문제에 대해서 타협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통일 정신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 사람들 간의 교류와 직접적인 접촉만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민족 통일이란 중요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북 양측이 타협을 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