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봄은 북한 외교에 많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거의 25년 동안 북한과 소원했던 러시아와의 관계가 갑자기 활기를 띱니다. 당시 북한 관영언론들은 러시아에 대해 긍정적인 자료를 많이 실었고 고위급 대표단이 모스크바와 평양을 상호 방문했습니다. 공식적으로 십여 년 동안 1억 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무역량을 2020년까지 10억 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이것도 모두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희망은 거품처럼 생겨났다 바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북한과 러시아와의 무역액은 오히려 감소했습니다. 북한 외교관이나 간부 대부분은 러시아의 경제 위기 때문에 이런 희망이 사라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지만 이는 잘 못된 생각입니다. 경제 위기가 없었더라도 평양이 희망했던 대러시아 경제협력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반복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북한 정부는 가끔 새로운 기적과 같은 기술이나 정책을 제안하고 얼마 동안 이것을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합니다. 그러나 몇 년 지나면 그 기술이나 정책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 이유를 분석하면 좋겠지만 북한 정부는 곧바로 그 실패를 감추면서 또 다른 희망으로 대체합니다.
CNC 기술에 대한 희망, 마식령 스키장을 비롯한 해외 관광 발전에 대한 희망, 강성대국 문을 여는 2012년에 대한 희망 모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면 북한이 러시아에 대해 가졌던 희망은 어떻게, 왜 붕괴했을까요. 오늘 그 원인을 분석해보겠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경제정책은 좋게 평가될 만 하지만 반대로 외교정책은 거의 재앙이라고 할 만큼 엉망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중국을 적대시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중국을 대체할 해외의 협력국가가 필요했습니다. 러시아에 대한 희망은 러시아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 반대하고 옛 소련과 조금 비슷한 정책을 실시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러시아의 등장을 본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은 러시아와 손을 잡으면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러시아는 옛 소련과 거리가 멉니다. 러시아는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훨씬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만 문제는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사실입니다. 엄밀히 말해 굳이 비싼 가격을 치르며 지켜야 할 국익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때에도 경제적인 계산이 깔려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돈을 잘 벌 수 있다면 북한에 투자하고 합작했겠지만 그런 희망이 없다면 북한과 협력하지 않았을 겁니다. 러시아는 이런 태도를 북측에 솔직하게 알렸지만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은 러시아가 옛 소련처럼 그냥 돈을 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러시아에서 북측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의 간부들은 러시아 경제 때문일 것이라고 판단하겠지만 반대로 북측에서 얻을 것이 없다는 러시아 정부의 엄격한 정책적 판단이 그 이유라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