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봉건사회 북한과 장사꾼 역할

0:00 / 0:00

북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살펴보면 이미 100여 년 전에 무너진 이조시대(조선왕조)와 매우 유사한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사회주의 국가라고는 하지만, 오히려 봉건주의 사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봉건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권력의 세습입니다. 이러한 봉건사회 속에서는 왕의 아들이 왕이 되고, 양반의 아들이면 양반이 되고, 노비의 아들이면 당연히 노비가 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이조 시대에도 과거 시험을 통해 민중 출신이라도 양반이나 관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양반의 아들이 아니면 과거 시험에 응시조차 하기 어려웠고 더구나 과거에 합격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농민의 자녀들에 대해 보이지 않는 너무나도 심한 차별 때문이었습니다.

북한 또한 비슷합니다. 1940년대 광복 이후에 북한의 노동당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세계를 건설하고, 그들이 통치할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간부집 자녀들만 김일성종합대학을 비롯한 명문 대학에 입학하고, 이후에 좋은 직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이조 시대의 양반들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조 시대의 양민, 즉 농민들과 비슷한 사람들은 북한에서 누구입니까? 토대가 별로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좋은 대학에 입학할 수도 없고 극심한 차별은 당하지 않는다 해도 크게 발전할 기회가 없습니다. 북한에서 토대가 나쁜 사람들은 이조 시대의 노비나 천민들과 비슷합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어려움과 차별이 많은 생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조 시대의 조선을 비롯한 여러 봉건주의 사회가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쉽게 말하자면 장사행위의 일반화라 할 수 있습니다. 양반들이 무시했던 상인이나 공인들은 열심히 일하였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사회의 싹을 틔웠습니다. 결국 이러한 진보세력은 세습특권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 도전하였고 혁명적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보면 1700년대부터 이러한 장사꾼들의 영향력을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장사행위가 많이 활발해졌습니다. 요즘 북한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장사를 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배급해줄 물건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필요한 자원을 얻어내고 개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북한의 장사꾼들은 이조 시대의 양반으로 볼 수 있는 간부들을 싫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활동은 보이지 않게 간부들의 권력기반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북한에서 조용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북한의 장사꾼들은 간부들에 직접적으로 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과 경험은 북한의 체제 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체제 붕괴를 바라는 세력이 아니지만 사회 변화의 필요성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조 시대를 비롯한 여러 봉건주의 사회에서 세습통치세력과 시장경제세력이 대립하였을 때 어느 쪽이 승리했는지는 역사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최종 승리자는 장사꾼들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미래의 북한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