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이후 북한만큼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나라가 별로 없습니다. 원래 북한은 공산주의라는 말도 많이 사용했지만 세월이 갈수록 외국에서 받아들인 냄새가 짙은 공산주의라는 말보다는 국산품인 주체사상에 대한 언급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북한의 실제 사회구조를 보면 100년 전에 진보지식인들이 꿈꾸었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보다는 옛날 봉건사회와 유사한 점이 아주 많습니다.
봉건주의와 제일 비슷한 것은 정치구조입니다. 북한은 자신을 공화국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상 절대 군주제 왕국입니다. 벌써 1940년대부터 김씨 왕조는 실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수구적이고 전근대적인 정치구조입니다. 사실상 북한에서 제1위원장이나 주석으로 알려진 임금이 절대 권력을 갖고 있지만 지금 남아 있는 대부분의 왕국에서 왕은 아무 실권이 없고 상징적인 인물에 불과합니다. 영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왕이 사실상 관광의 대상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 간부 계층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핵심 간부들은 거의 빠짐없이 간부집안 출신들입니다. 수준이 높은 전문적 지식이 필요한 전문직에서만 부모가 간부가 아니었던 사람들이 가끔 보입니다. 일반사람들은 하급 간부가 되기도 너무 어렵고, 간부가 되더라도 출세길이 막혀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봉건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봉건사회에서는 양반이나 귀족들이 정치 권력을 독점했습니다. 봉건주의 사회에서 아주 예외적인 경우 농민 출신이 하급 관리직, 즉 하급간부가 될 수 있었지만 미천한 배경 때문에 승진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 사회에서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경제가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놀랍게도 북한은 봉건사회와 더욱 비슷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봉건 사회에서도 상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장사를 하고 여러 가지 물건을 시장에서 팔았기 때문에 돈이 많으며 양반보다 더 부유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분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사회에서 양반들만 권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돈이 많은 상인들은 불가피하게 그들의 감독 하에서 살았습니다.
북한도 비슷합니다. 1960년대에 북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출신성분입니다. 출신성분에 문제점이 있는 사람, 즉 토대가 좋지 않은 사람이면 능력이 아주 많아도 미래가 없습니다. 요즘에 이러한 사람들은 장마당에서 장사를 잘 하고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들은 양반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북한 장사꾼들은 조선시대 상인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물론 봉건사회에서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개인 자유마저 없는 노비나 천민들입니다. 북한에서 정치범관리소, 즉 수용소에 갇힌 수많은 정치범들은 노비들과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0년대 북한 사람들이 식민지와 봉건사회에 도전했고 보다 아름다운 사회에 대해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는 사실상 봉건사회의 부활을 초래했습니다. 당시의 역사 배경을 보면, 거의 불가피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북한 역사의 비극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