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최근 전해지는 소식을 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이 나라의 정치노선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현 단계에서 김정은이 바람직하게 생각하고 있는 변화가 중국의 개혁처럼 체계적이며 보편적인 개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제1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 일부가 지향하고자 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들이 희망하는 것은 북한식 개발 독재라고 생각합니다.
좋든 싫든 동아시아 근대화는 개발독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개발독재는 1950년대나 60년대 남한, 대만, 싱가폴 등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 국가들이 개발독재 정책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이룩한 다음에는 중국과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가사회주의 경제를 포기하고 개발독재 모델을 채택하기 시작했습니다.
개발독재의 기본 원칙은 무엇일까요? 남한이든 중국이든, 베트남이든 지하자원이 없거나 그리 많지 않은 국가들입니다. 이들 국가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것은 노동력뿐입니다. 그래서 개발 독재국가에서 권위주의 정권은 나라를 커다란 공장으로 변질시킵니다. 나라는 외국에서 재료와 기술을 수입해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잘 가공한 다음 완성품으로 수출합니다.
이와 같은 경제 전략은 값싸고 양질의 노동력이 많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루 세끼를 얻기 위해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개발 독재국가에서 권력과 자본 계층은 노동운동을 진압하고 월급을 낮은 수준으로 동결시키려 노력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 독재 국가에서는 노동자의 생활 수준이 좋아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장기적으로 고도 경제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임금인상으로 인한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을 통제, 제한할 수밖에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 간판을 내걸고 있는 중국과 베트남의 개발독재는 자본주의 본질을 감추지 않고 개발독재를 시행했던 남한이나 대만보다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에 대한 진압과 통제가 더 심합니다.
바꿔 말하자면, 자본주의 나라들의 개발독재는 물론 김일성이나 모택동 독재만큼 엄격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자유로운 국가도 아닙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정부를 본격적으로 반대하는 정치활동은 불가능합니다.
동아시아 역사를 보면 개발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나라는 오직 북한뿐입니다. 북한은 왕조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북한의 움직임을 보면 김정은도 경제개혁을 위해 개발독재를 시도할 희망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은 분단 국가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개발독재를 시행해도 체제 안전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개발독재 자체는 그렇게 바람직한 체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독재가 김일성, 김정일의 세습독재보다는 덜 나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 지도부의 개발독재 시도를 환영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