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북 장마당 활성화에 거는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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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시대에도 그랬지만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 장마당은 더욱 번창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말 고난의 행군시기부터 장마당은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기본세력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관영 언론은 여전히 사회주의를 운운하고 있지만 사실상 북한사회는 시장경제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는 사회입니다.

장마당의 성장이 북한이라는 나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장마당이 혁명세력의 온상이 될 수도 있고, 조만간 체제를 도발하는 단체나 인물이 생길 장소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저는 의심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도 장마당은 북한에서 거의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마당도 역시 당국자들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기 어려운 공간이지만 그래도 공장 기업소보다는 자유가 많습니다.

장마당의 제일 중요한 차이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날 수도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소에서는 사람들은 배치를 받은 대로, 국가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했지만 장마당에서는 누구든지 돈을 더 잘 벌 수 있거나 더 편리하고 보람 있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결국 북한 주민들끼리 그 전에는 만들기 어려웠던 수평적 관계가 많이 이루어집니다. 장마당에서 사귄 사람들은 장사뿐만 아니라 일반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사회나 정치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합니다. 물론 체제에 대한 도전은 결코 용납되지 않지만 제한적으로 중간 간부들이나 지방행정기관에 대한 비판은 가능한 환경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마당의 성장 덕분에 북한에서 주민들에 대한 감시가 사실상 많이 느슨해졌습니다. 원칙대로라면 집에서 숙박검열을 당할 수도 있고 다른 지방으로 갈 때 반드시 통행증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상 이와 같은 규칙은 수많은 경우 뇌물만 고이면 무사통과 되기 때문에 유명무실화 되었습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아무 때나 뇌물을 주면 통행증을 발급받고 북한 국내에서 아무 곳이나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숙박검열을 할 때도 이런저런 불법이 노출된다면 뇌물이라는 이름의 마술을 이용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간부들도 장마당 활동이 없으면 서민들이 살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뇌물을 받지 않아도 눈감아 주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장마당의 성장은 북한사회에서 서민들끼리의 수평적 관계를 강화해주는 동시에 제한적이지만 개혁과 비판의 무대를 마련해 준다고 봅니다.

이것을 감안하면 장마당은 북한체제에 위험한 정보가 많이 퍼지는 공간입니다. 북한의 경우 위험한 지식은 압도적으로 남조선을 비롯한 기타 나라의 생활상과 북한의 참된 역사입니다. 사람들이 서로 믿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조금 덜 무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중국 개혁의 성공이나 대원수님의 개인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어느 정도 할 수 있습니다. 보위부원을 비롯한 사법기관 간부들도 이러한 이야기를 비밀리에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뇌물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면 많이 단속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 장마당에서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서 과대 평가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독재국가는 거의 다 장마당이 있습니다. 장마당이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북한에서 장마당이 활성화되는 변화 그 자체는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