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의 북한 역사를 보면 장마당 아줌마들과 노동당 간부가 싸우는 역사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에서는 장마당을 중심으로 하는 시장 경제가 자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시장화 성공에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중년여성들입니다. 그들은 주부로써 집안일을 돌보는 것을 주 임무로 받고 있기 때문에 공장에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장사에 종사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가 있습니다. 결국 북한의 자본주의는 여성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 당국자들은 밑에서부터 시작된 시장경제를 인정하지 않고 장마당 활성화를 가로막으려 노력했습니다. 중년남자인 노동당 간부들은 장마당 아줌마들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아줌마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싸움은 생사가 걸린 싸움입니다. 북한 시골에서는 장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굶어 죽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입니다.
당국자들은 시장을 억제하거나 없애버리기 위해서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2005년에 배급제를 선언했지만 성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는 젊은 여성들이 장사를 하지 못하게 했고 이런저런 상품을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침내 2009년에는 장마당 장사꾼들의 경제적인 기반을 파괴하려 화폐개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의 이러한 노력은 아무런 결실도 맺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노동당 간부들은 국가와 관료주의를 지향하는 시대착오적인 경제 체제를 고집하고 있지만 장마당 여성들은 자생력과 자신의 노력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시장경제를 체험한 것입니다.
결국 노동당 간부들과의 싸움에서 장마당 여성들이 이겼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에서 나오는 소식을 들어보면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새 지도부는 장마당과 시장경제를 없애버리는 것보다는 이를 이용하거나 격려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제아무리 무서운 노동당 권력도 장마당 경제의 힘, 가족들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북한 여성들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좋든 싫든 현대사회에서 시장경제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해주는 연구결과는 많습니다. 하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장마당에 나선 북한 중년여성들에게 복잡한 경제학 이론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잘 배우고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사후 지독한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무엇보다 장마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이르러서 북한의 고위간부들까지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