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9.9절과 사회주의에 대한 소박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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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9.9절을 맞이했습니다.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적으로 창립되었습니다. 북한 책을 보면 김일성이 창립한 국가라고 하지만 약 25년 전부터 공개화된 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료를 보면 다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립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련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결정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북한의 1948년 헌법도 평양에서 준비했지만 소련에서 결정을 받았습니다. 북한의 1948년 헌법을 교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김일성이 아닙니다. 당연히 스탈린입니다. 그 당시에 스탈린이 북한 헌법을 직접 교정한 사업 관련 자료는 다행히 소련 기록보관소에 많이 남아 있고, 지금 누구든지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도 볼 수 있지만, 어떤 이유 때문인지 이 자료를 열람한 북한 간부들이 아직 한 명도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남한에서 보수 성향의 학자들은 당시에 북조선이 소련의 괴뢰 국가였다고 지금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948년에 창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 소련에서 많은 감독을 받고, 사실상 소련의 지휘하에 수립되었지만, 당시에 북한 사람들은 새로운 국가에 대해서 희망이 매우 많았습니다.

1940년대 말의 북한을 보면 매우 이중적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소련 군대, 그리고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지도부의 통제와 감시가 매우 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혁명적 정신이 진짜 많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소련의 정책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지만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 희망이 진짜 많았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알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당시에 북한 사람들은 자기 민족이 만든 민족국가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사회주의가 누구든지 평등하게 자유롭게 보람있게 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사회주의를 환영하였습니다.

당시에 북한 사람들에게 사회주의는 배급제도도 아니고 노동당 간부들의 특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국가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하고 보람이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북한 뿐만 아니라 당시에 사회주의 혁명을 경험한 많은 나라들에는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동구라파의 경우를 보면 몇몇 나라에서는 민중 대부분이 공산당을 구 소련의 괴뢰 세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싫어했지만 그밖의 다른 나라에서는 공산당이 약속한 사회주의에 대해서 희망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당시에 사회주의를 믿던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시장경제보다,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빠른 경제성장을 초래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는 문화발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과 물질적인 풍요를 의미하였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 알고있는 바와 같이 이것은 환상이었습니다. 1940년대 말 사람들의 희망과 달리, 사회주의가 초래한 것은 만성적인 경제 침체, 소비품 부족, 그리고 극소수 간부들의 특권적인 생활 뿐이었습니다.

1948년 9월 9일을 생각해보면 성공하지 못 한 당시의 민중의 희망과 기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당시에 시작된 사회주의란 실험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그 때 사회주의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희망은 매우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북한 인민들이 가졌던 생각은 숭고한 것이었고 소중한 실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