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10일 북한 주민들은 큰 행사에 참가합니다. 올해도 예외가 아닙니다. 북한 사람들에게 10월 10일이라는 큰 명절이 왜 생겼냐고 물어본다면, 그들은 1945년 10월 10일에 김일성 장군이 공산당 북조선 조직위원회를 창립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북한 사람들 거의 모두 다 이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틀린 것입니다. 10월 10일이란 날짜가 공산당 북조선 조직위원회가 창립된 날도 아니고, 김일성이 창립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공산당 북조선 조직위원회라는 단체가 아예 없었습니다.
날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1945년 10월 북한에 친소련 정권을 설치하기 위해 소련 군대는 한반도 북반구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모아서 조직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10월 10일 소련 군대는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모집하고 조직 문제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정을 내린 날짜는 10월 10일이 아닌 10월 13일이었습니다. 북한 언론도 이 사실을 1950년대 말까지는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말부터 갑자기 10월 13일이 아닌 10월 10일을 당 창건일로 선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왜곡은 조직명입니다. 북조선 공산당 조직위원회는 1950년대 말 이후에 만들어낸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당시 언론이나 역사 도서를 살펴보면, 10월 13일에 창립된 단체는 조선공산당에 의해 북조선분국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북한 선전 일꾼들이 역사를 왜곡한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10월 13일, 평양에서 창립된 위원회는 처음부터 1945년 8월 서울에서 창립된 조선공산당의 지도권을 인정하였습니다. 10월 13일 북조선분국이 창립되자 서울에 위치한 조선공산당 당중앙 앞에 축하 편지를 보내고 이 사실을 명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조선 공산당을 창립한 사람은 박헌영입니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공산당 창시자들은 1950년대 김일성에게 숙청, 처형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북한 언론은 조선공산당 창시자가 박헌영이라는 사실을 더욱 인정할 수 없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역사를 왜곡한 것입니다.
제일 흥미로운 사실은 1950년대 이후 북한 언론의 주장과 달리 북조선분국 책임 비서가 김일성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김일성은 소련 군대에서 공산당과 연결한 것을 기밀로 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책임 비서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책임 비서를 지낸 사람은 현재는 거의 잊혀진 김용범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소련 정부 공작원으로써 1930년대 소련에서 북한으로 왔습니다. 사실상 김일성이 북조선분국 책임 비서로 취임한 때는 2달이 늦은 1945년 12월 17일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기 위해서 굳이 기밀 자료를 뒤져볼 필요도 없습니다. 1940~50년대 북한 언론은 북조선분국 배경을 솔직하게 서술하고 인정하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이 옛날 서적이나 신문을 읽을 수 있었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당국자들이 주민들로 하여금 옛날 도서나 신문을 읽을 수 없도록 단속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는 과거 역사 서적이나 신문조차도 일반인들이 도서관에서 읽을 수 없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옛날 책이나 신문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면 북한정권이 주장하는 역사 이야기의 대부분을 주민들은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