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독립채산제와 경제개혁

0:00 / 0:00

요즘 북한의 많은 공장, 기업소들이 독립채산제를 도입함으로써 노동자들에게 꽤 많은 생활비를 지불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특히, 외화벌이를 잘 하는 몇몇 광산이나 제철소에서는 근로자 월급을 수십만 원이나 지급한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 돈으로 50만 원이라고 해도 시장환율을 감안하면, 미국 달러로 70불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중국 기준으로 보아도 높은 금액이 아니고, 남한기준으로 보면 아주 낮은 월급입니다. 그래도 북한 사람들에게 이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큰돈이라 할 수 있는 이런 높은 월급을 받게 된 북한 노동자들은 기분이 매우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렇게 높은 생활비를 지불하는 기업소가 많아질수록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따져본다면 금융과 재정관리 체제가 아직까지도 미숙하고 불안정한 북한에서 이처럼 임금인상을 계속하는 정책은 역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이유는 인플레이션, 즉 화폐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폭발적으로 올라가는 사태에 대한 위험입니다. 50만원이나 60만원의 월급을 받은 북한 광부는 기분이 좋을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 말하면 근로자들의 이와 같은 높은 소득 때문에 북한의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일시에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경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유통되는 상품과 현금의 양이 일치해야만 합니다. 상품에 비해 현금이 많이 유통되기 시작하면 상품공급에 비해 현금이 많이 나도는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현금유통의 증가는 현금의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고 물가인상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북한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높은 임금도 하루아침에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고 돈의 가치가 폭락해 한낱 종잇조각이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북한 사람들은 2010년에 이와 같은 현상을 이미 경험해보았습니다. 당시 화폐개혁 이후 월급은 바뀐 화폐의 비율에 맞춰 액수를 대폭 늘려 지급했지만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는 바와 같이 물가는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높은 월급을 받는 것이 불과 몇 개월 만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혼란이 발생했습니다. 사실상 액수가 올라간 월급으로 구입할 수 있는 물건의 양은 화폐개혁 이전과 비교하여 아무런 차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화폐개혁 이전보다 물가가 폭등해 실제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대폭 줄었습니다.

이와 같은 위험을 방지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월급을 지불하는 동시에 시장에 물건을 충분하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시장경제 제도에 적합한 은행이나 재정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또한 재정 관련 규칙과 법을 개정해야만 합니다.

중국은 1980년대 개혁, 개방정책을 실시하면서 동시에 은행 및 재정 구조를 완전히 개량하였습니다. 북한도 중국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북한경제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이와 같은 독립채산제에 의한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이 물가폭등 및 경제혼란을 초래하게 된다면 수많은 북한 노동자들을 곤경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국가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미 경험했듯이 독립채산제를 중심으로 한 공업과 경제관리 구조의 변화가 올바른 방향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행과 재정구조의 변화를 비롯한 경제관리체계 전반에 대한 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