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구소련의 러시아 사람입니다. 그 때문에 가끔 소련이 무너진 이유에 대해서 질문을 받곤 합니다. 제가 보기에 소련이 무너진 이유는 공산당의 권위주의와 정치적 자유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정치적 자유가 없다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경제의 비효율성입니다.
소련의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를 능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특히, 일반 서민들이 직접적으로 필요로 하는 생활용품 때문에 그렇습니다. 냉장고든, 자동차든, 신발이나 옷을 막론하고 소련제품의 품질은 자본주의 국가, 시장경제주의 국가의 것들보다 훨씬 안 좋았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소련사람들이 이러한 선진국들과의 경제적인 격차에 대해 알 수 없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소련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수준을 서양 국가들의 생활수준과 비교할 수 없었더라면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문제점에 대해서 불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소련체제의 운명을 결정한 계기는 소련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높은 생활수준에 대해 알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이러한 정보의 확산이 이뤄지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였습니다. 한편으로 서양국가들이 자신들의 성공을 소개하기 위해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선전입니다. 외국 방송을 듣는 사람들이나 외국에서 나온 신문, 잡지 등을 본 소련 사람들은 외국의 생활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자신의 생활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외정보의 자발적인 확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발적인 확산이란 인적교류 및 무역을 통해 이뤄지는 정보의 확산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면 구소련에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외국 사람 대부분은 소련과 관계가 좋은 나라 출신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사람들보다 그들은 다른 나라사람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외국인들과 이런저런 접촉을 통해서 외국 생활을 배우는 소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소련 사람들도 외국으로 많이 나갔습니다. 일부는 개인적으로 갔지만 대부분의 경우, 국가에 의해, 정부에 의해 파견되었습니다. 해외로 간 소련사람들은 외국생활을 직접적으로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소련 당국자들의 감시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국인들과 더 자유롭게 만나서 외국언론과 각종 정보를 더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활발한 무역거래도 소련붕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소련정부는 국제석유가격이 많이 올라가서 석유를 판매함으로써 외화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소련정부는 외국에서 소비품을 많이 수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수많은 소련사람들은 소련제 소비품과 일본이나 독일과 같은 나라들에서 수입한 소비품을 비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비교를 통해서 그들은 소련경제의 낙후성을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을 보면, 북한에서도 구소련과 아주 비슷한 변화가 전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갈수록 북한이 쇄국정치를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말하면, 북한의 경우에도 해외생활에 대한 정보의 확산이 구소련처럼 체제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