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개혁은 하되 개방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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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갈수록 자본주의 바람이 더욱 세게 부는 것 같습니다. 김정일 시대의 북한은 자발적으로 시작된 장마당, 그러니까 시장경제를 단속할지 말지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장마당을 중심으로 한 북한의 시장경제는 전례가 없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김정은과 그 측근들은 시장 경제의 성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분야에서 보면 김정은의 북한은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정치분야에서 김정은 정권은 인민 대중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많이 강화했습니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북한은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차단하는데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은 김정은 정책의 기본 방향을 잘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엇갈리는 정책을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중국과 달리 정치적인 개방을 하지 않지만 경제에 있어서는 중국식 경제개혁을 추진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김정은 정권은 주민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김정일 시대보다 더 엄격하게 하고 있습니다. 국경경비가 많이 강화되고 중국 손 전화 사용을 철저하게 단속하며 영상물 통제도 김정일 시대보다 더 심합니다. 김정은과 그의 측근들이 쇄국 정치를 강화하려는 이유는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알 수 없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 집권계층은 인민이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북한보다 얼마나 잘 사는지 알게 된다면 체제에 대한 실망과 적대감이 확산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쇄국 정책을 체제 유지의 필요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지도부는 만성적인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제개혁의 필요를 잘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험이 말해주듯 경제발전은 시장의 활성화로만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난 3-4년 동안 김정은 정권은 조심스럽게 경제개혁을 시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체로 이들 개혁이 1970년대 말 중국 개혁과 유사합니다.

물론 정치적인 우려 때문에 북한 집권계층은 중국에서 경제개혁의 경험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도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정권은 자신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비판해온 개혁을 인정한다면 인민들이 사상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앞으로도 개혁을 하면서도 동시에 언론과 선전에서는 이 사실을 부정할 것 같습니다.

역설적으로 북한 집권계층은 조심스러운 경제개혁을 실시하는 상황에서 국경경비 강화나 외부영상물 단속과 같은 조치는 보다 더 강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이 매우 조심스럽게 개혁을 추진한다 해도 북한이 주장하는 주체사상과 국가의 인민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 능력의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제개혁이 더욱 진전된다면 북한 인민들이 활발한 무역과 외화벌이 때문에 외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기회가 많아질 뿐만 아니라 장마당 경제의 성장 덕분에 배급이 없어도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는 인민들이 국가에 덜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변화는 필연적으로 사상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은 쇄국 정치를 더욱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북한은 경제분야에서 제한적인 개혁을 실시하고 있지만 정치, 사회 분야에서의 개방에 대해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