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북한에 인도주의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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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이번 25일로 예정된 남북이산가족상봉을 돌연 무기 연기시킴으로써 남북관계가 다시 경색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성명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 연기이유로 두 가지를 내세웠습니다. 첫째, 지금의 남북관계개선은 자기들이 주도한 것인데도 남측이 박근혜 정부의 성과인 것처럼 선전하면서 거꾸로 대결책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북한은 남한 내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남한당국의 "통일 애국인사들에 대한 온갖 탄압소동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북한이 성명을 통해 내세운 표면적 이유일 뿐 실제 의도는 다른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한은 당초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재개 회담을 연계시키려 했습니다. 북한의 실제목적은 관광 사업으로 연간 4,000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금강산 회담이고 이산가족 상봉은 이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남한 정부는 북한 입장과는 달리 '선(先) 이산가족 상봉-후(後) 금강산 회담'으로 분리 대응해 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산가족상봉 행사가 무산될 경우 남한 내에서 박근혜 정부가 금강산 관광에 소극적이어서 일이 잘못됐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그 책임론이 정부로 쏠리게 되면 추후 금강산회담 과정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북한이 개성공단 정상화 닷새 만에 불과 나흘 뒤로 다가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전격 무산시킨 배경에는 고도의 전략적 의도가 깔려있습니다. 북한이 올해 초 전쟁협박쇼를 벌이면서 일방적으로 폐쇄했던 개성공단을 9월 들어 정상화시킨 것은 외화벌이를 지속하려는 경제적 목적과 함께 남북대화를 종용하는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남북대화 협력의 구호를 앞세우며 적극적으로 타협적인 자세로 회담에 임했던 북한으로서 일단 공단 재가동을 통한 달러 확보가 마무리되자 남한의 박근혜 정부 흔들기에 나선 것입니다. '달러박스'인 개성공단이 일단 재가동된 만큼 더 이상 남측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고 박근혜 정부의 위상을 높여주는 유화책은 쓰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바뀐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6·25전쟁 후 남한 내에서 북한 간첩단 사건이 적발되면 남한정부의 조작극이고 남북대결을 조장하는 것이라며 이를 핑계로 남북대화를 중단시키는 반응을 보여 왔습니다. 북한이 이번에도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이산가족 상봉에 갖다 붙여 남북관계를 파탄시키려는 것도 과거의 전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북한이 남한의 종북세력을 두둔하는 것은 '남조선 혁명'을 위한 기반 와해를 방지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도주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북한의 행태는 1970년대 초 적십자회담이 시작 된 지 40여 년이 경과한 지금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번 북한의 조치는 남북의 모든 이산가족과 우리 민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반(反)인륜적 행위로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북한으로부터 인도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 고기를 잡으려는 연목구어(緣木求魚)식 발상으로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북한과의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또다시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