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북, 정치협상회의 제의한 까닭

지난 8일과 9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본회담 의제에 관한 쌍방의견 대립으로 결렬됐습니다. 북한 측은 회담이 결렬된 뒤 남한 정부를 '역적패당'이라 부르며 실무회담 결렬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했으며 남한 측은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 없이 어물쩍 넘어갈 수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쟁점인 본회담 의제에 관해 남한 측은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에 대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다른 문제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데 반해 북한 측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힌 다음 쌍방 군부 사이의 상호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 중지를 의제로 제시했습니다.

남측이 제시한 책임 있는 조치란 두 사건에 대해 북측이 사과하는 태도를 먼저 보이라는 것이고 북측이 요구한 상호도발로 간주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 중지란 서해 해상경계선 재설정을 제기해서 남한의 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북측의 제안 속에는 남측이 실시할 예정인 '키 리졸브' 훈련과 같은 군사훈련 중지와 남측의 대북심리전 방송 중지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놓고 볼 때 북측은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와 천안함, 연평도 사건은 어물쩍 넘긴 후 북방한계선 무력화 등 다른 문제 토의로 사람들의 이목을 돌리려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점은 지난 1년간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때문이었습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남한 해군 46명과 민간인 등이 목숨을 잃은 불행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결자해지(結者解之)원칙에 따라 남측에 사과함으로써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것이 순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거부하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간 북측이 이틀 만에 남북 제정당간에 회담을 갖자는 내용의 남북정치협상 회의를 제의하고 나온 것은 대화의 진정성을 전혀 찾아보기 힘든 일입니다.

북측이 현시점에서 남북 정당 간 회담을 제의한 것은 남한의 국론분열과 남한 정부 견제에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북측이 남한의 민주당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남한당국이 남북대화에 나서도록 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이명박 정부의 강경대북정책을 햇볕정책으로 회귀시키기 위한 압박을 가하라는 신호라고 보입니다.

아울러 북한은 남북대화를 하는 척 시늉을 냄으로써 북 · 미 대화를 재개하고 6자회담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바라는 중국요구에 부응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에 노동당 외에 자율권을 가진 다른 정당이 존재하며 남북 정당 간 합의가 집행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대화를 앞세운 쇼를 할 때가 아니라 진정성을 보일 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