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김정일의 사대외교 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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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부터 며칠간은 동북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줄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중국방문과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방문에 이어 6자회담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의 남한방문 등이 꼬리를 물고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5월에 이어 3개월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한데는 몇 가지 다급한 사유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그것은 첫째 북한이 코앞에 다가온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표면화하기 전에 중국의 승인을 얻으려는 목적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북한이 최근의 폭우로 엄청난 수재를 당해 경제가 엉망인데다 미국의 추가적 대북금융제제 조치로 입게 될 경제적 타격에 대한 중국의 협조를 요청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27일, 장춘에서 가진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고민을 털어놓고 도움을 간청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중국으로서는 김정은의 후계구도를 인정해달라는 북한의 요청에 대해 과거 조선왕조가 중국 황제에게 세자책봉을 받으려는 모습과도 같기 때문에 반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대국 또는 상왕으로 예우하는 북한에 대한 시혜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경제지원도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우리는 김정일 정권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토록 주체니 자주니 외세배격이니 하고 떠들던 북한의 자존심은 어디 갔으며 굴욕적 사대(事大)외교 행각으로 고귀한 민족의 존엄성까지 버려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은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중국 방문과정에서 고(故) 김일성 주석이 다녔던 위원중학교와 항일 유적지인 베이산(北山)공원 및 하얼빈에 있는 김일성 유적지 등을 방문했습니다. 이런 북한판 성지순례에 김정은이 동행했다면 그가 후계자로서의 혁명 정통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북한주민에게 보여줌으로써 권력세습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반(反)시대적인 3대 권력세습을 이같은 유치한 방법으로 미화시키는 한편으로 평양을 방문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모욕적인 홀대를 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박 3일의 방북기간 중 김정일 면담을 예상했으나 김정일이 전격적으로 중국을 방문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북한에 억류중인「곰즈」씨를 데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은 차갑게 외면하면서 중국에 밀착하겠다는『통중봉미(通中封美)』전략을 취한데 기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판입니다.

북한이 중국의 품안에서 최대한 버티겠다는 입장이지만 중국이 싫어하는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중국의 태도는 달라질 것입니다. 결국 남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규모 전면적 지원 없이는 북한경제의 회생이 어렵고 그로 인해 김정은 후계작업도 순탄치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