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수위를 높이면서도 내심으로는 미국과 대화를 바라고 있음을 시사하는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5일 ‘공은 미국에 가 있다’며 ‘정세를 폭발시키는 것이 전면대결전의 목적이 아니고 미국이 옳은 길을 택한다면 조선도 호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주장하는 미국의 ‘옳은 길’이란 북-미 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미국이 대화를 제안하면 북한은 언제든지 호응할 자세가 돼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 외무성은 지난 16일 담화에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담화는 또 ‘다른 길을 택하면 도와주겠다는 미국의 유혹이 개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이와 같은 북한의 태도는 겉으로 볼 때, 상호 모순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13일, 방송 인터뷰에서 ‘중국은 그간 북한의 붕괴를 우려해 북한의 잘못을 계속 참아왔지만, 생각이 바뀌고 있다’면서 ‘중국의 변화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나쁜 행동에 상을 주지 않겠다’면서도 북한이 핵, 미사일 실험중단 같은 긍정적 조치를 취하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북한이 핵, 미사일 실험을 더 하지 않으면 다시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어 토머스 도닐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북한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진정한 협상에 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말하는 ‘의미 있는 조치’란 북한의 핵 포기를 말한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볼 때,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옳은 길’은 북-미 대화를 하되, 북핵 문제는 꺼내지 말고 한반도 평화협정문제나 논의하는 회담을 하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 말한 ‘의미 있는 조치’는 북한 핵 포기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써, 비핵화를 위한 회담을 할 용의를 표시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담에 관해 쌍방이 동상이몽의 태도를 취하고 있어 그 접점(接點)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에서 설령 회담이 열린다 하더라도 지난 20년간 해왔던 형식적 대화패턴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북한당국자들의 상황인식 문제입니다. 과거와 달리 중국의 대북정책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체제는 무조건 북한 감싸기라는 혈맹 관계를 벗어나 잘못은 지적하고 시정토록 하는 일반적인 국가관계로 북한을 대하겠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미국과 견해를 같이하고 있어, 대북정책에 대한 미-중 공조체제가 형성돼 가는 국면입니다. 여기에 남한의 박근혜 정부도 입장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북핵문제에 관한 주변 상황이 전과는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북한당국은 변화되는 흐름을 깨닫지 못하고 10년 전에 취했던 낡은 협상전술을 다시 꺼내 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파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