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대북 식량지원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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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문제를 놓고 미국 정부가 실태 조사에 착수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올 연초부터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지난해 최악의 한파와 수확량 부족으로 식량난이 심각하다며 식량지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또 얼마 전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주민 610만 명이 식량위기에 처해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국제사회와 남한정부는 북한의 식량지원 요청에 의문을 제시하며 북한의 식량수급 및 배분실태에 대해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로버트 킹 대북인권특사를 단장으로 하는 미국 국무부 대표단이 지난달 말 북한을 방문하여 식량사정을 직접 살펴보았습니다. 미국은 이번 조사결과를 토대로 남한정부 및 유럽연합(EU) 등과 협의하여 식량지원 재개여부를 결정할 방침입니다.

그런데 식량지원과 관련하여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원식량에 대한 분배의 투명성 확보 문제입니다. 북한당국은 그동안 남한으로부터 받은 식량의 대부분을 군대, 노동당 간부, 평양시민 등 특권층에 배분하고 취약계층인 아동, 임산부, 노인 등에게는 거의 보내지 않았습니다.

남한에 온 탈북자들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78,2%는 한 번도 배급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21.8%는 배급을 받아본 적이 있으나 북한당국의 강요에 의해 다시 반납했다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분배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합니다.

둘째는 지원규모가 인도적 정신에 맞게 결정되어야 합니다. 현재 미국 정부가 고려하는 것은 인도적 지원이지 김정일 독재정권의 강화를 도와주는 정치적 지원이나 북한 군사력 증강을 돕는 군사적 지원은 아닙니다. 정치적 지원이라고 한다면 대규모지원이 되겠지만 인도적 지원의 성격을 띨 경우 그 규모는 소규모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 양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의 관례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는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북한당국은 과거 남한의 좌파정권이 햇볕정책의 미명아래 매년 30만t가량의 식량을 보내주면 이것을 받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뿐 근본대책 마련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국제사회는 북한에게 식량이라는 물고기를 보내주기 보다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고 북한당국도 이를 수용하는 자세변화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동농장제 폐지, 개인에게 경작권 부여, 새로운 품종개발, 비료생산 등 혁신적 조치를 단행함은 물론 막대한 군사비를 영농개선에 사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핵, 미사일 개발에 쏟아 붓는 5억여 달러 가운데 2억 달러만 식량도입에 써도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군대를 앞세우는 선군(先軍)정치를 민생문제를 중요시하는 선민(先民)정치로 바꾸는 것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북한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