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남쪽에서 꿔간 식량차관을 갚을 때가 됐는데도 불구하고 입을 다물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남한 당국은 지난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북한 측에 총 7억 2,000만 달러어치의 식량차관을 제공했습니다. 그 중 2000년에 제공한 쌀 30만 톤과 옥수수 20만 톤에 해당하는 차관액 8,836만 달러 중 첫 상환분 583만 달러를 지난 7일 갚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번 상환액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철도, 도로건설, 경공업 원자재 차관 등 총 9억 3,054만 달러에 대한 원리금도 갚아야 합니다. 남한정부는 북한이 첫 상환기일을 아무 말도 없이 넘기자 상환기일을 재고지하고 추가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난과 경색된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상환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북한은 지난 4월 중순 이후 격렬한 대남비난을 하루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명박 대통령을 쥐로 묘사하면서 원색적 비난을 가함은 물론 남한의 일부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공개통첩장 형태로 무력도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기념행사에 관한 남한 언론의 보도를 문제 삼아 해당 언론사들의 좌표까지 공개하며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이 남측으로부터 빌려간 돈을 갚을 의사가 없어 보입니다. 사실 대북식량 차관의 계약내용을 보면 남한당국이 북한의 경제사정을 감안해 상환시기와 이자의 조건을 북측에 유리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북한이 첫 상환액부터 나 몰라라 하면서 남측에 대한 온갖 비방과 협박을 하는 것은 일말의 양심과 신의마저도 저버린 불량배나 다름이 없습니다. 북한이 처음부터 돈을 갚을 의사가 없었다면 차관 대신 무상원조를 달라고 요청했어야 옳았습니다. 또 북한이 갚을 의사는 있는데 경제사정이 어려워 상환기일을 어기게 되었다면 앞으로 언제, 어떻게 갚겠다고 구체적인 상환계획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돈은 없지만 광물과 같은 다른 물자가 있을 경우 현금 대신 현물상환이라도 하겠다고 대답을 하거나 아니면 부채 일부를 탕감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차관을 상환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감이나 최소한 미안한 생각이라도 갖고 있다면 대남비난, 협박, 도발 같은 적대적 태도를 버리는 것이 온당할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김정은 정권이 과거와는 달리 새롭게 변화됨으로써 정상국가가 되기를 기대해 왔습니다. 정상국가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제적 규범을 잘 지키는 나라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대외관계에서 신뢰를 쌓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약속과 합의사항을 마음대로 파기하고 도움을 주는 나라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욕설과 저주를 퍼부을 경우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차관을 제공할 나라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식량차관 계약서 내용의 일부 미비점을 핑계로 상환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태가 온다면 불량국가라는 불명예스러운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