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남한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의 방북 당시 언행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것은 남한 대선개입 차원을 떠나 남북관계 개선의 기본 규칙(룰)을 깨는 행위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띠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의 이번 협박은 남한국회에 들어간 친북성향의 의원들에 대한 징계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올해 남한 대선에서 보수세력인 새누리당의 집권을 막음으로써 야당의 집권을 도우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만약 북한당국의 의도대로 친북(親北)정권이 들어설 경우, 새로운 햇볕정책의 미명하에 남한으로부터 대폭적인 경제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 김정은 주도하에 남북관계를 끌고 가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보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북한의 행태가 지속될 경우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규칙이 깨짐으로써 평화통일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민족이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남북 당국 간 대화와 협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대화와 협상은 공개적인 것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비밀에 부쳐야 될 사안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1970년대 초 남북대화가 시작된 후 지금까지 남북한당국이 지켜온 불문율이며 관례입니다.
따라서 남북한 지도급인사들 사이에서 오고간 대화내용도 공개할 것과 공개해서는 안 되는 부문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신뢰는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열어나가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필수조건이며 초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난해 6월, 남북비밀접촉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귀중한 신뢰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습니다. 북한은 이 접촉에 나섰던 남측 대표들의 실명을 공개하며 ‘이명박 역적패당과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그 많은 방북인사들 가운데서도 유독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만 찍어서 그들의 북한에서의 언행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한 것은 신의를 저버린 반(反)통일적 언사입니다.
북한당국이 이 같은 치졸한 태도를 계속 보일 경우, 앞으로 남한의 어느 정권이 북한을 상대로 진지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겠습니까? 결국 진솔한 대화의 부재는 남북관계 개선을 어렵게 만들어 통일을 지연시키고 말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은 남한에서 말하는 종북(從北)의 개념부터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남한에서 말하는 종북주의나 주사파(主思派)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북한의 3대 권력세습과 열악한 인권상황, 그리고 핵 개발 등에 동조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남한 국민들은 이러한 종북주의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양식과 도덕성마저 저버린 북한체제를 두둔하는 퇴행적인 사고에 공감하는 남한 국민은 몇 명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최근 친북성향의 발언을 규탄하는 남한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북한을 싫어하는지, 그 원인을 제공한 자신들의 행위부터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북한당국의 규칙위반은 국제사회로부터 외교기밀도 지키지 않는 ‘믿을 수 없는 나라’로 낙인찍게 될 것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번 잃게 되면 이를 회복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