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대 칼럼] 북(北),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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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 출범 후 북한의 변화에 두 갈래 상반된 흐름이 나타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지난 6일 관람한 모란봉 악단의 공연 도중 미국 할리우드 영화 ‘록키4’ 가운데 주인공인 미국인 복서가 소련 복서를 때려눕히는 장면이 상영됐습니다. 이날 공연에선 미국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히트곡 ‘마이웨이’가 연주됐고,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우 같은 미국 디즈니사의 만화 캐릭터들도 등장했습니다. 또 젊은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남한의 ‘걸그룹’을 연상시켰습니다. 김정은은 공연이 끝나자 엄지를 치켜세우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으며 북한 매체는 지난 시기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로운 공연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김정은은 1990년대 스위스 유학시절 미국 프로농구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고급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등 미국식 생활을 추종했습니다. 따라서 이날 공연도 서구문화를 즐기는 김정은의 개인 취향과 북한 청소년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에서 과거 공연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지만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과거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문화를 황색바람으로 규정, 경계해왔습니다. 북한 언론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것은 자본주의 문화의 침투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데 있어 원자탄보다 더 위험한 것이 제국주의자들이 퍼트리는 황색바람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김정은의 서구문화 동경은 기존의 황색바람 차단 정책을 뒤집어엎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아울러 김정은의 서구문화 수용정책은 외부정보 유입을 자연히 초래하면서 북한주민의 의식변화와 개방, 개혁 분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김정은의 취향과는 달리 북한정권이 취하고 있는 군사, 경제, 대남정책 등은 조금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지난 12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아세안지역 안보포럼(ARF)에서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은 성명서를 통해 ‘우리의 정당한 주권인 우주탐사와 경수로 건설을 통한 평화적 목적의 핵에너지 개발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 개발을 평화적 목적의 핵개발,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우주탐사를 위한 인공위성 발사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또 북한당국이 최근 간부들을 대상으로 집중 해설하고 있는 김정은의 새로운 경제관리 조치내용도 개방, 개혁과는 다른 북한식의 독특한 사회주의 경제관리 체계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한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경직된 대남정책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이상과 같은 점에서 세계적 추세를 강조하고 서구문화를 동경하는 김정은의 생각과 그의 정권이 취하고 있는 기존 폐쇄정책 간에는 큰 괴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북한의 장래를 결정짓는 주요변수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김정은의 서구문물 수용정책과 선군정치 및 통제경제 정책 간의 충돌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집권층 내의 갈등과 북한사회에 혼란을 초래함은 물론 체제 불안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