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수해 지원 문제를 놓고 남북한 쌍방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그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남한 측은 지난 3일, 북한의 수해 구호를 위해 생필품과 의약품 등 50억 원 상당의 물품을 보내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다음날, 대남 전통문을 통해 '작년처럼 통 크게 지원해 달라'며 식량과 시멘트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남한 측은 이미 통보한 바와 같이 생필품 및 의약품 등 50억 원 상당의 긴급 구호물자만 보내고 쌀과 시멘트 지원은 고려치 않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대북 수해지원의 원칙과 방향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이 이번 폭우로 인해 적지 않은 수해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측이 인도주의 정신과 동포애에 입각하여 수해지원 물자를 보내려는 것은 매우 적절하고 환영할 만한 처사입니다.
그럼에도 북측이 남측의 선의에 대해 불만스러운 태도로 '통 큰 지원'을 요구하고 나온 것은 매우 오만 무례한 태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수해 지원과 같은 긴급구호는 지원물자의 품목이나 규모보다 동족이 당하는 고통을 다소나마 위로하고 돕자는 정신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선의는 선의로 받아들이고 고마움을 표시해야 하거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식량과 시멘트 등 대규모 물자를 보내라고 강압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기본 예의에도 어긋나는 일입니다.
특히 북한이 식량이나 시멘트를 보낼 경우,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전달돼야 하는데 그 동안의 관례를 보면 그렇지 못했습니다. 식량은 군량미나 특권층 배급용으로 전용되었고 시멘트는 수재복구용이 아닌 다른 정치적 목적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번에도 시멘트를 보낼 경우, 평양시 10만 세대 살림집 건설 등 체제 선전용 공사현장으로 빼돌려질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북 수해지원은 남한 내 식량사정도 고려하여 추진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남한 정부의 매년 쌀 재고량은 평균 140만t 수준으로 적정 재고량 72만 톤을 훨씬 초과한 관계로 대북 지원능력을 충분히 보유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과다한 재고량 방출과 기후조건 악화 등으로 올 10월 예상 재고는 88만 3천 톤으로 적정 재고량에 근접해 있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대북 지원 여력이 감소된 데다가, 지원 식량에 대한 북한 내 분배 투명성마저 확보돼 있지 않아 쌀 지원은 사실상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에 더해 최근 북한 당국은 남한 당국을 따돌리고 미국과의 대화에만 매달림으로써,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재연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금강산 사업자인 남한의 현대아산 등 남한측사업자들을 배제하고 미국업체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의 남한계 무역 회사인 미주조선평양무역회사는 최근 북측과 금강산 사업과 관련된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북한 당국이 이처럼 배은망덕한 행위를 계속하면서 남측을 향해 수해 지원 규모의 확대를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파렴치한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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